[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16 (273)
[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16 (273)
  • 경남일보
  • 승인 2016.10.03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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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16 (273)

할 일이 없어 집 주위에 지천으로 널려 있는 삭정이를 주워 모아 군불 나무를 장만했다. 꺼진 구들장과 벽 틈으로 연기가 소올 솔 들어와서 방안에 가득 찼지만 그도 조금씩 견디는데 익숙해졌다. 구들장이 그나마 제구실을 해서 제법 쩔쩔 끓는 아랫목의 온기가 여간 위안이 아니었다.

함박눈은 공연히 마음까지 푸근하게 했다. 남부지방에서는 좀체 보기 어려운 현상이라며 내년에는 풍년이 들겠다고 사람들은 말했다. 고향에서 언제 이렇게 한가하게 눈 구경을 한 적이 있었던가.



“눈이 똑 갓 탄 이불솜 겉다.”

아침상에 올릴 김장김치를 꺼내다 말고 하늘을 올려다보며 이유 없이 기분 좋아하던 어머니의 모습이 불현듯 떠오르기도 했다. 꼭꼭 묶어서 쌓아놓은 나뭇동을 헐어서 뜨듯하게 군불을 지펴 놓고 어머니는 호박범벅을 끓이고 고구마를 삶았다. 누군가 다른 사람을 위해서 식사 준비를 해본 적이 없는 양지였지만 어머니의 그때 심정이 이랬던 건 아닐까 싶은 맛을 본다.

차려 놓은 저녁상에 아예 손도 대지 않은 채 바깥마당으로 나와 멀리 산굽이를 돌게 되어 있는 마을 앞길로 시선을 보내며 서성거리기도 했다. 어머니도 이런 기다림에 힘을 얻어서 지치지 않고 많은 아이들을 낳고 기른 건 아닐까.

양지는 팔짱을 끼고 서성거리며 이럴 때 호남이네 세 식구가 주영의 재롱을 깡충깡충 앞세우고 나타났으면 얼마나 좋을까, 설레는 가슴의 동계를 음미하며 동구 밖 길에다 둔 시선을 걷어 들이지 않았다. 마음이 너무 허허로웠다. 도대체 어디에다 마음을 붙이고 살아야 할지 도저히 자신이 생기지 않았다. 자신이 얼마나 억지스럽게 살았는지도 그림을 보는 듯 확연해졌다.

하늘이 갰을 때는 국화를 뽑았다. 이제 지켜 주는 이 아무도 없는 폐허에서 겨울바람과 눈비를 맞으며 꽃들은 보기 싫게 이울어져 갈 것이다. 또 호기심으로 드나드는 발길도 심심찮게 많을 것인데 벌거벗은 어머니의 시신을 그냥 내버려두는 것만큼이나 두고 떠나는 마음이 편치 않을 것 같아서다.

마당 주위에 있는 것은 아직 손도 못 댔는데 꽃포기는 한데 모아 놓고 보니 수월찮게 많은 양의 꽃무더기가 되었다. 씨 뿌리거나 꺾꽂이를 해서 당신의 마음이 가는 곳마다 지천인 빈터에다 심어 놓고 돌보아서 탐스럽게 꽃이 벙글면 어머니는 윗대 할아버지 시절에 가난한 중생들을 위해 부처님에게 바쳤다는 절 용연사(龍蓮寺) 법당에도 꽃다발을 만들어 올렸다. 병원으로 가는 날, 배웅 인사라도 하듯 늘어진 채로 발목에 걸리는 꽃덤불을 올려놓으며 어머니는 그랬었다.

“부처님 전에 지성으로 꽃을 바치모 후 세상에도 여자로 환생을 한담서? 만약에 인도 환생할 수만 있다모 부잣집 고명딸로 태어나서 가리고 뽑은 좋은 혼처로 시집을 가 남편 사랑도 받고 아들딸한테도 원 없이 잘해 주는 좋은 어미가 되보고 싶었다. 그래서 이번 가을에도 최고로 잘 핀 것들로만 부처님 전에다 갖다 디맀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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