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인의 고통
김성영 (시조시인·고금논술학원 원장)
타인의 고통
김성영 (시조시인·고금논술학원 원장)
  • 경남일보
  • 승인 2016.11.15 08: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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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영

낚시를 따라가서 처음으로 지렁이와 낚시 바늘을 결합시키는 작업에 도전했을 때의 경험을 잊지 못한다. 엄지와 검지 사이에서 탱탱하게 꿈틀거리는 가늘고 긴 원통형 전율이 내 몸의 중심을 관통하는 느낌이었다. 지렁이에게 통점이 있는지 여부에 대한 나의 무지는 차치하고, 수전 손택의 ‘타인의 고통’은 낚시 바늘에 전신을 관통당하는 그 환형동물이 통점이 있다는 전제 하에 읽기를 주문한다. 고통의 사례로 제시된 희생자들이 낚시 바늘에 꿰이는 지렁이와 같거나 더 처참한 지경에 처해 있기 때문이다.

‘몸통이 세로로 톱에 잘리는 고문을 당하는 중세 시대의 순교자’와 ‘가능한 한 살려 둔 채 며칠에 걸쳐 칼로 살을 도려내면서 고통을 극대화하는 능지형을 당하는 죄인’을 보려는 욕망은 우리의 일상과 닿아 있다고 한다. 고속도로의 끔찍한 자동차 충돌 현장을 지나는 운전자들이 속도를 늦추며 소름 끼치는 섬뜩한 장면을 보고 싶어하는 본능적 욕구가 같은 맥락이라니.

고통을 낳는 주체와 구경꾼의 관계가 점점 모호해지는 오늘날 수전 손택의 질타는 칠통을 두드리는 죽비 소리다. 시시각각 보도되는 지구촌 곳곳의 참상과 고통받는 사람들을 보면서 ‘아, 끔찍한 일이군’ 하고 채널을 돌리는 안전한 우월감 속의 방관자적 연민은 특권을 누리는 자들의 무능하고 뻔뻔한 반응이다… 특권을 누리는 우리와 고통받는 그들이 똑같은 지도상에 존재하고 있으며 우리의 특권이 그들의 고통과 연결되어 있음을 숙고하라…고통받는 피사체를 카메라로 ‘쏘는’ 가해성 관람자의 속성을 버려라….

타인의 고통을 나 자신의 고통으로 수용하는 것이 쉽진 않겠지만, ‘위험하고도 바보같은 연민’을 걷어낸 사례는 이청준의 소설 ‘당신들의 천국’에서도 관찰된다. 소록도 병원장으로 부임한 이래 나환자들에게 낙원을 만들어주고자 진심으로 전력투구하다가 전출당한 뒤 나환자들의 고통을 최대한 공유하기 위해 평범한 신분으로 섬에 돌아가 환자들과 함께 생활하며 사는 조백헌. 타인의 고통을 대할 때 지향해야 할 마음가짐의 표본으로 손색이 없는 사례가 아닐까 싶다. 예컨대 기아와 질병으로 고통받는 어린 난민들을 위한 성금 후원도 근본적으로 이런 인식에서 발현된 사랑이리라.

김성영 (시조시인·고금논술학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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