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16 (275)
[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16 (275)
  • 경남일보
  • 승인 2016.10.03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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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16 (275)

“참, 언니야. 오늘은 이 말로 꼭 따지 볼라 캤다. 정남이 이 가시나는 어느 구석에 쳐박히가 집구석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도 모리고, 지만 막내둥이라꼬 걱정 없이 희희낙락하고 있는고, 내가 얼매나 분개했는지 아나?”

양지는 독단적인 일 처리로 인해 자신이 두고두고 벌을 받는다는 생각을 했다. 시간도 장소도 적합지 않았으나 비켜 설 수 없는 입장이었다. 갈해진 목젖을 침으로 축이고 난 양지는 호남을 향해 얼굴을 돌렸다. 호남아 사실은-. 집에 사람이 너뿐이냐고, 구박 당할 각오를 했다.

감추고만 있어서 될 일이 아니었다. 품고 있기 버거운 비밀은 털어놓고 중압감에서 벗어나야 한다. 생각만 그렇게 고쳐먹어도 막혔던 심장이 툭 틔는 듯한 시원함이 느껴졌다.

그러나 옆에서 자매의 대화를 지켜보고 있던 고종오빠가 눈짓을 보냈다. 시간과 장소가 적합하지 않다는 신호였다.

고종오빠는 상문을 왔던 현태로부터 그간의 일을 비교적 상세하게 들었던 모양이었다. 호남의 입에서 무슨 말이 틔어 나올지 짐작되는 바 없지 않았다.

“니는 사람도 아니다. 그런 걸 우째서 니만 알고 쓱싹하노. 니만 사람이고 다른 사람들은 말캉 사람도 아이고 뭐꼬? 정남이 이 가시나가 이사를 하고서도 말이 없다꼬, 에미 노릇을 제대로 몬 해서 의논도 안하는 기라꼬 엄마가 얼매나 맘 상했던고 아나?”

“할 말이 없다. 정남이 얘기는 이담에, 너 나와서 차근차근 하도록 해. 내 생각이 너무 일방적이고 또 소견이 좁았다는 것 정말 그때는 미처 깨닫지 못했어.”

얼마간 양지를 노려보며 영문 모를 감정으로 씨근거리던 호남이 그다운 선선한 동작으로 눈가에 배인 눈물을 손등으로 훔쳤다.

“우찌 생각하모 언니 판단이 옳았는지도 모르겠다. 엄마도 그 모양 해갖고 평생 고생하고 살 바에는 신간 편히 잘한 것 같기도 하고”

양지는 문득 호남을 올려다보았다.

시끄러운 가족사가 발 닿지 않는 곳에다 어린 정남이를 보호해 놓고 있는 줄 호남이는 알고 있는 것 같았다. 호남의 단순함이 의연 숙성하게 돋보이는 순간이었다.

“마, 인제는 다 지나간 일이고 앞으로 우찌 살아야 될낀고 그 문제만 남았다. 용냄이 언니가 있지만 그게는 우리가 돌보면 돌봤지 기대할 것도 없고, 이민 간 사람은 또 너무 멀어서 남이나 마찬가진께 천지간에 우리 셋뿐인데 정신 똑바로 차리야 된다. 언니 니가 깃대가 돼야 된단 말이다. 엄마가 저리 살다간 게 포원이 져서도 우리는 반드시 남보란 듯이 한 번 잘살아 봐야 된다. 그러기 위해서는 언니 니가 절대로 힘을 내야 된다. 알았재, 약속하재?”

“답답하다. 우리 다른 이야기는 너 나온 다음에 하자”

양지는 숨이 막히기 시작했다. 그러잖아도 그녀는 좌절하고 싶을 만큼 자의식에 시달리고 있는 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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