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16 (276)
[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16 (276)
  • 경남일보
  • 승인 2016.10.03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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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16 (276)

“뭘 그리 에럽게 생각하노, 욕심이 눈앞을 가리서 판단이 흐린다 아이가. 할 일로 줄 세아 놓고 제일 앞에 있는 것부터 착착 각단지게 매듭을 지아라. 그래 놓고 다음다음을 처리 해야제 순서가 없이모 일이 갑절로 에럽아 보인다”

“호남아 니가 언니 같다. 니가 언니 해라”

“한 소리 했더마 고마 비행기 태우네. 없이, 언니가 있는데 내가 와 나설 끼고”

호들갑스러운 동작으로 호남이 손사래를 치는 사이에 고종오빠가 가볍게 양지의 팔을 잡아끌었다.

“시간 다 됐는 갑다”

“우찌 잘 되것지 뭐, 나가서 보자”

교도관에게 인도되어 가는 호남이 돌아보며 작별을 한다.

조금은 가볍고 조금은 우울한 심정으로 호남이 들어간 문을 바라보고 있는데 다음 차례의 면회객들이 밀려 들어왔다. 자숙한답시고 주눅 든 표정으로 이쪽의 눈치만 살피고 있었더라도 봐 내기 어려웠을 텐데 조금도 기죽지 않은 호남의 태도가 알 수 없는 위안을 주었다.

“자네 왔구먼”

늘어서 있는 면회신청인들의 곁을 지나오다가 꼬리에 서 있는 누군가를 발견하고 고종오빠가 먼저 다가갔다. 주영아빠였다. 두 사람을 확인한 주영아빠의 눈이 양지와 고종오빠가 들어갔다 나온 면회실 쪽으로 건너갔다. 그리고는 실망스러운 표정을 떠올리며 들고 있던 면회신청서를 손아귀로 구겨 쥐었다. 면회는 하루에 한 번밖에 되지 않았다. 기회를 놓친 듯한 아쉬움이 침통하게 드리워지는 주영아빠의 표정을 보고 고종오빠가 물었다.

“왜 무슨 긴한 얘기라도 전할 게 있었나, 일은 잘돼가고 있다면서?”

“예, 뭐 그런 건 아니지만…”

부인을 했지만, 눈길을 피하는 것이며 얼굴 전체를 어둡게 뒤덮고 있는 수심과 힘없는 목소리가 심상찮은 그의 내면을 증명해 보였다. 그는 소심하고 깐깐하지만 남에게 불손하거나 예의 못 차리는 사람은 아니었다. 그리고 양지와는 직접 만난 횟수는 적어도 호남을 매개로 한 허심한 대화를 전화로나마 격의 없이 자주 나누던 사이였다.

“가, 우리 차라도 한 잔 하게”

앞장서는 고종오빠의 채근에 못이긴 듯 주영아빠가 머뭇거리며 따라나섰다.

구치소에서 멀지 않은 찻집으로 세 사람은 들어갔다.

차를 주문하고 나자 막상 할 말이 없다. 주영아빠의 분위기에 휩쓸린 무거운 침묵이 견디기 어려웠다. 그 침묵을 깨뜨리기 위해 설마 누구에게든 맡겨서 잘 돌보아지고 있겠지 싶었으나 주영의 안부를 물었다. 대답은 뜻밖이었다.

“누나한테로 보냈습니다”

그 음성에서는 왠지 어떤 단절감이 실린 단호함이 전해왔다. 양지는 얼른 그 냉담함을 지울 셈으로 토를 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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