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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7년 10월24일 '중학 입시지옥'
박은정  |  gnnews@g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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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6.11.17  21:1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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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67년 10월24일, 10월 25일, 11월15일 지면에서 당시 중학교 입시지옥에 대한 기사를 다루고 있다. 경남일보 그 때 그 시절.


입시지옥에 빠진 국민학생들 

중학교 입시를 한달 여 앞둔 1967년 10월 24일 경남일보에는 과외단속이 헛구호로 그치고 있으며 교사들이 부업으로 과외를 하는 등 정상수업 무용론이 등장했다. 
10월 25일에는 학생들을 밑천으로 사업을 하고 있는 불법과외·무허가 학원의 등장을 고발하는 기사가 보인다. 
11월 15일에는 본격적으로 시작된 중학교 입시전쟁에 대한 기사가 보인다. 진주시내 중학교가 8개교로 늘었지만 여전히 들어가기 힘든 좁은문이며, 대아중학교는 실리를 쫓아 후기교로 학생모집을 한다는 내용이다. 


60년대는 고교뿐만 아니라 국민학교(지금의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중학교에 진학할 때도 입학시험을 치러야 했다. 
오늘날 ‘SKY’나, ‘인 서울’ 하기 위해 고등학생들이 입시에 시달리는 것처럼 국민학생들도 소위 일류중학교에 진학하기 위한 사교육의 열기가 뜨거워 ‘과외망국’이라는 목소리가 나오기도 했다. 중학생이 재수도 불사했던 때이다. 
지금도 수능에서의 문제 하나에 합격과 불합격이 좌우하지만 그 때도 문제 하나 때문에 당락이 갈리는 웃지 못할 사건이 벌어지기도 했다. 
1964년  ‘무즙 파동’과 1968년 창칼 파동’이 그것이다. 무즙파동은 재판까지 이어지기도 했으며 ‘창칼 파동’은 결국 중학교 입시제도의 폐지를 가져왔다.  
사교육 열풍으로 인한 폐해도 상당해 학원과 과외가 초등학생에게까지 성행해 현직 교사의 30%가 부업으로 과외를 한다는 통계도 나왔다. 
결국 1969년 입학생부터 중학교 무시험 추첨제가 실시돼 은행알을 넣은 수동식 추첨기를 돌려서 학교를 배정받아 학생들을 ‘뺑뺑이 세대’로 부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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