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0>의로운 시인 윤동주와 경남의 인연(1)
시인 윤동주(1917.12~1945.2)는 예언자적 저항시인이라 불리기도 하고 민족시인이라 불리기도 하는 의로운 시인이다. 그는 북간도 명동촌에서 태어났고, 중학교 입학할 무렵에 용정으로 이사 가서 일제 만행으로 일본 후쿠오카 감옥에서 살인 주사를 맞고 순국할 때까지 주소지는 그 북간도 용정이었다. 우리가 조두남의 ‘선구자’를 많이 부르고 있는데 그 제목은 본래 ‘용정의 노래’였다. 윤동주의 무덤은 지금 그 용정 교회묘지에 있다.
그러니까 윤동주는 경남과는 거리가 먼 인연으로 여겨질 수 있다. 기껏해야 연희전문학교를 졸업하고 일본으로 유학을 떠날 때 부산항을 이용하여 현해탄을 건넌 정도의 인연이라면 인연일 것이다. 그런데 최근 ‘동주’라는 영화가 나오고 첫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1948)가 출간될 때 그 원고를 정병욱 교수가 보관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지면서 정병욱 교수가 경남 출신이라는 점이 부각되기 시작한 것이다.
정병욱교수는 국문학 연구의 제1세대 학자로 유명하다. 부산대 교수, 서울대 교수를 거쳤다. 저서로 ‘국문학산고’, ‘한국고전시가론’, ‘한국고전의 재인식’, ‘한국의 판소리’, 편저로 ‘구운몽’, ‘배비장전’, ‘옹고집전’ 등이 있다.
윤동주와의 인연은 정교수가 연희전문학교 입학하고 기숙사 생활을 하면서부터 시작된다. 정병욱은 ‘잊지 못할 윤동주의 일들’(나라사랑 23집)에서 그 과정을 살피고 있다.
“내가 동주를 알게 된 것은 연희전문학교 기숙사에서였다. 그는 연희전문에서 나의 두 반 위인 상급생이었고 나이는 다섯살이나 위였다. 그는 나를 아우처럼 귀여워해주었고, 나는 그를 형으로 따랐다. 기숙사에 있으면서 식사시간이 되면 으레 내 방에 들러서 나를 이끌어나가 식탁에 마주 앉았기로 나는 식사시간이 늦어도 그가 내 방에 노크할 때까지 그를 기다리곤 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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