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즈베키스탄의 아리랑요양원
권상철(우포생태교육원장)
우즈베키스탄의 아리랑요양원
권상철(우포생태교육원장)
  • 경남일보
  • 승인 2016.11.16 1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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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상철

옛 실크로드에 위치한 우즈베키스탄은 끝없는 외침과 함께 티무르 제국의 번영을 누렸던 곳이다. 무더위가 한창인 지난 여름, 교육부 역사답사단의 일원으로 중앙아시아 고려인의 삶을 연구하고자 이 열사의 땅을 밟았다. 고려인이 있는 아리랑요양원도 목적지 중 하나였다. 중앙아시아 고려인 37만 명 중 23만 명이 우즈베키스탄에 산다. 이들 뿌리는 조선 말기에 굶주림을 피해 두만강을 건너는 연해주 이주로 시작됐고, 뒤에 많은 독립지사들도 합류했다.

연해주 고려인은 1922년 소련 정권 수립 때 적극 협력해 러시아인과 잘 지냈지만, 일본 침략이 격화되면서 비슷한 외모와 일본어를 잘한다는 이유로 간첩이 될 수 있다고 본 정부로부터 경계대상이 됐다. 또 연해주에서 벼농사 성공을 보고 정부는 이를 중앙아시아까지 확대할 생각으로 고려인 강제이주를 추진하게 된다. 1937년 고려인 디아스포라가 시작돼 재산도 못 챙기고 화물열차에 수천 명씩 실려 20일 만에 당도한 곳이 중앙아시아이다. 이주 도중에 수백 명이 첩보원에게 죽음을 당하고, 열 명 중 여섯 명은 주먹구구식 계획 탓에 수십에서 4000km에 걸쳐 다시 이주해야 했다. 혹한에 토굴을 파고 겨울을 보냈으며 1945년까지는 이동의 자유도 없었다고 한다. 정착지에서는 기후와 물이 맞지 않아 숱한 어린이와 노인들이 죽어나갔다. 그럼에도 이들은 억척같이 살아남아 훗날 ‘김병화농장’, ‘폴리타젤’ 등 소련 최고의 집단농장을 건설하며 각계 지도자로 진출하는 등 겨레의 이름을 빛냈다.

아리랑요양원은 아담한 2층 건물로 수도 타슈켄트에 자리 잡고 있었다. 한국국제보건의료재단이 운영하는 이곳에는 평균 연령 83세가 넘는 고려인 1세대 39명 노인들이 여생을 보내고 있다. 당찬 기백이 느껴지는 40대 초반의 김나영 원장은 애초에 봉사하러 왔다가 원장까지 맡아 눌러앉게 됐다며 모국 손님들이 잊지 않고 찾아준 것만으로도 연신 고맙단다. 마당에는 모국을 기억하며 심었다는 소나무가 시원한 그늘을 만들고 있었다. 힘없는 나라에 태어난 탓에 이역만리에서 외로운 노후를 보내는 동포들과 이들을 따뜻하게 보듬고 있는 아리랑요양원은 대한민국이 잊어서는 안될 피붙이의 이름이다.

 

권상철(우포생태교육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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