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편의 시조(時調) 속에
김성영 (시조시인·고금논술학원 원장)
한 편의 시조(時調) 속에
김성영 (시조시인·고금논술학원 원장)
  • 경남일보
  • 승인 2016.11.22 1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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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영
‘수양산 바라보며 이제를 한하노라/주려 죽을진들 채미도 하난 것가/비록에 푸새엣것인들 긔 뉘 따헤 났다니.’ 이는 단종의 왕위를 찬탈한 수양대군을 인정할 수 없다는 결사 의지를 중의법으로 담아낸 성삼문의 시조인데, 자신의 절의를 강조하기 위해 은유의 대상으로 표면에 내세운 백이 숙제의 고사가 중요한 모티프이다.

은나라 말 고죽국의 백이·숙제 왕자는 서로 왕위를 양보하고 유랑하던 중 문왕이 죽은 줄 모르고 주나라로 가다가 은나라의 폭군 주왕을 치러 가는 무왕과 조우한다. 신하가 주인을 치는 것은 인이 아니라며 말렸지만 끝내 주나라의 천하가 되자 수양산에 들어가 고사리만 캐 먹다가 굶어 죽는다.

성삼문은 고사리조차 먹지 말아야 했다며 극단 의지를 천명한 것인데, 사마천은 사기에서 ‘흉악한 도척은 호강하며 천수를 누리고 백이·숙제 같은 의인은 불행하게 죽었다. 천도, 과연 있는가’하고 통탄한다. 당시 주왕의 폭정으로 천하 백성이 도탄에 빠진 상황을 감안하면 주왕이야말로 도척 중의 도척이니 백이·숙제는 미시적인 가치에 함몰되었고 무왕이 진정한 의인이라는 시각이 설득력을 얻지만, 사마천의 입장을 간과해선 안 된다.

전한 무제 때 태사령 사마천은 역사서 편찬이라는 가문의 숙원을 안고 있었다. 그런데 무제 유철이 애첩 이부인의 오빠 이광리에게 기회를 주려 한 흉노와의 전쟁에서 이릉 장군이 선전분투하고도 포로가 되자 멸문을 하려 했고, 이에 사마천 홀로 이릉의 억울함을 변호하다가 무제에 밉보여 사형수가 되고 만다. 50만전을 내거나 궁형(거세형)을 받으면 사형을 면하는데 돈이 없는 사마천은 사기 편찬의 대업을 위해 궁형의 치욕을 자청하여 살아 남는다. 사마천이 절개를 지켜 죽음을 택했다면 성삼문의 시조에는 백이·숙제가 등장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이처럼 한 편의 짧은 시조에 구구절절의 역사가 숨어 있다. 더욱이 현대시조는 외연의 확장과 분화로 사회에 대한 다각적 인식뿐 아니라 다양한 시적 자아의 에스프리가 형형색색 깃들어 있다. 특히 시조는 우리의 유서 깊은 전통 시가이기에 시조시인들은 시조의 일반화와 일상화에 많은 노력을 기울인다. 가장 우리다운 것이 가장 세계적인 것이기 때문이다.
 
김성영 (시조시인·고금논술학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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