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16 (279)
[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16 (279)
  • 경남일보
  • 승인 2016.10.03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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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16 (279)

“와 안 그렇겠노. 하지만 여자 없이 산다던 저 사람 말 동생도 들었제? 앞으로 그 말이 남자들 사이에 통용어가 될지도 모른다. 요새 여자들이 좀 드세냐? 걸핏하면 독신 선언이나 하고 쥐나 개나 여성상위 시대 타령이니”

삶의 전반을 많이 꿰고 있다는 것은 결코 제도권내의 졸업장만으로 따질 일이 아니다. 산속에서 잔뼈가 굵은 고종오빠의 생각 속에도 사회전반의 정서는 거의 포착되어 있었다.

“앞으로 제 이 제 삼의 호남이는 많아 질 거다. 생활이 윤택해졌다고 절대 잘사는 게 아니라. 결국 겉만 빛 좋은 개살구지. 정신상태의 질은 오히려 저하되고 있거든. 걸핏 하모 파업선언을 하는 기능인이지 어머니도 아내도 아닌 여자들 안 많나. 그것뿐인가, 애정 없이 태어난 아이들은 독성을 띈 잡초마냥 무성하게 자라서 길거리를 메우고…. 내가 이런 말 막한다고는 생각하지 마. 난 어머니의 어, 자도 입에 올려보지 몬하고 자란 사람이다. 그렇지만 내 마음속에서 어머니는 나를 이 세상에 존재하게 한 것만으로도 신비함 그 자체였어. 일전에 어디선가 읽었는데 이런 게 있데. 여자는 신(神)이며 동시에 종이기도 하다. 꽃처럼 아름답고 또 간신처럼 교활하기도 하고 악마처럼 잔인한가 하면 바위처럼 둔하고 번개처럼 성급하기도 하다. 그뿐만 아니라 토끼처럼 연약한가 하면 면도칼처럼 예리하고 얼음같이 냉정하며 삼노처럼 질기기도 하다…, 아, 생각이 막히네. 비유가 한참 있었는데….”

세상 여자들의 심리를 다 읽고 있는 오빠에게 마치 자신의 속내까지 들킨 것 같아 양지는 시선을 아래로 둔 채 가만히 듣기만 했다.

난처해진 양지의 심정을 구원이라도 하듯 마침 커피가 날라져 왔다. 말을 끊고 오빠가 차 마시자는 손짓을 했다. 둘은 조심스럽게 설탕과 크림을 넣고 저은 뒤 따끈한 커피를 마셨다. 주영아빠의 커피가 식을까 봐 화장실 쪽을 살펴보고 있는데 주방 쪽의 가림판 뒤에서 주영아빠의 모습이 드러났다. 그가 가까워지기 전에 빠르고 낮게 고종오빠가 당부를 했다.

“조정은 내가 해볼 거니까 동생은 가만있어 봐. 이럴 때 친정 쪽에서 목소리 높이는 것도 저 사람에 대한 예가 아니거든”



고종오빠의 제안대로 가만히 있기로 작정하고 집으로 돌아왔으나 양지의 마음은 편치 않았다. 호남이 마저 인생의 좌절을 맞는다. 딸들의 길이 모두 막혔다. 모두들 나름대로는 열심히 최선을 다해서 한다고들 했다. 그렇다면 모두 빗나간 노정을 설정해 놓고도 무지하고 미련스럽게 앞만 보고 온 셈이 아닌가. 아무리 심각해지지 않으려 해도 호남의 일은 양지의 마음에 걸려 깐죽거렸다.

건둥건둥 말이 헤프고 통이 커서 그렇지 덩치만큼 실한 구석도 없지 않던 호남. 그런데 그 호남의 생에 본인도 예기치 못했을 이혼이 기다리고 있다. 내가 호남을 위해서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 곰곰 생각해 보았지만 별로 떠오르는 것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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