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16 (280)
[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16 (280)
  • 경남일보
  • 승인 2016.10.03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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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16 (280)

주영을 돌보는 일은 주영이 고모가 맡았고 주영아빠를 설득하는 일은 고종오빠가 자기에게 맡겨 보란다. 아직 양지의 입지가 그만큼 실하지 못하다는 반증인거였다. 가까운 사람들에게조차 자신의 능력이 인정되지 않고 있음을 깨닫는 일은 몹시 자존심 상하는 일이다. 나다운, 가장 나다운, 남들이 나를 신뢰하지 않고 못 배길 가장 나다운 능력 있는 나는 어떤 나일까.

저녁에, 양지는 우선 먼저 해야 할 일로 위탁모에게 맡겨 놓은 정남의 딸이 건강하게 잘 자라고 있는지부터 확인을 했다. 육아 비를 지불할 때도 됐다. 기다리고 있었던 듯 한 음성으로 위탁모가 전화를 받았다.

“그러잖아도 연락하고 싶었는데요, 이왕이면 전에 제가 말씀드린 일에 대해서 결단을 내리세요. 뜻은 좋지만 아직 결혼도 안한 이모가 그 애 때문에…”

“신체가 온전치 못하기 때문에 아무래도 국내 입양은 불가능할 거예요. 저도 매번 양심의 가책을 안 느끼는 건 아닌데 우리 수연이 같은 애기는 국내에서는 아직 어려워요.”

많은 아이를 외국으로 보내 본 위탁모는 일찌감치 좋은 환경에다 아이를 심어 주는 것이 아이를 위해서 좋다며 벌써부터 외국 입양을 권해 왔던 차였다.

“모든 미혼모들이나 그들의 보호자들이 모두 수연이 이모만 같다면 고아수출국이라는 우리나라에 대한 오명도 많이 바뀌겠죠. 하지만 에미도 아닌데 이모가 그렇게 양심 가책을 느끼기에는 처지가 다르잖아요”

그러나 양지는 아무래도 그 일의 당위성을 찾지 못했다.

‘나 혼자 마음 편하게 잘살겠다고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 생명을 공기조차도 낯선 곳에다 어떻게 양녀로 주어 버리는가. 더구나 여린 심성일게 분명한 여아에다 신체까지 기형인 아이를. 다른 나라 사람들은 피부색도 혈통도 다른 남의 나라 아이들을 양자로 들여서 자기 자식들과 구별 없이 잘 키운다는데, 그 애는 바로 내 동생의 핏줄 아닌가. 입양이라는 이름이 나오기 이전에 벌써 기를 사람이 결정되어야 당연하다’

그러나 현태와의 의견 차이로도 이미 확인했듯이 좋은 뜻 하나만으로 그녀가 허물어뜨릴 수 있도록 인습의 벽은 그렇게 간단하지를 않았다. 더구나 여타의 이유 때문에 수연의 존재는 아직 혈연에게조차 드러내서 의논해 볼 기회도 갖지 못했다.

“버팔론가 어디라는데 아들이 의사라네요. 딱 됐어요. 망설일 필요도 없겠어서 말미를 얻어 놓고 있어요.”

조건은 좋았다. 하지만 그럴 수는 없었다. 다소 흔들리던 마음은 어머니의 죽음 이후, 아니 이즘 들어 양지의 마음속에 굵은 쇠말뚝처럼 자리 잡기 시작했다. ‘내 몸이 여자인 이상 여자의 존재감을 실추시키는 짓은 절대 저지르지 않을 것이다.’

아이의 문제는 만나서 결정을 짓겠다며 일단 전화를 끊은 다음 양지는 강 사장의 아들 병훈과 알짱거리는 미스 김의 혼사 진행이 어떻게 되는지 알고 싶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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