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16 (281)
[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16 (281)
  • 경남일보
  • 승인 2016.10.03 20:0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16 (281)

결국 가중한 양육비 부담이 굴레가 되어 고아가 되지 않아도 될 많은 아이들이 수출될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는 결론을 얻은 것이다. 호남의 말대로 자매들의 선두에 서서 깃대를 세우려면 병훈의 재력이 필요했다. 목격했던 고질병이 마음에 걸리기는 했지만 그림에 정신을 앗기다 보면 아내의 사업과 씀씀이에는 의외로 관대하고 너그러울 수 있으리라.

하지만 길은 이미 양지에게서 다른 방향으로 흘러있었다.

‘꼬시다. 내가 그랬지 어서 무슨 짓이라도 저지르라고. 도대체 사람 말을 어떻게 듣는 거야?’

기대했던 추 여사의 입살도 맞받을 수가 없었다.

“그 분 여기 그만 두었는데요”

전화 속으로 들리는 음성은 냉랭하게 들리는 어떤 젊은 여자의 소리였다.

“왜요? 언제요?”

양지는 다급한 마음으로 거푸 질문을 던졌다.

추 여사가 강 사장을 떠났다니. 양지는 전신의 힘이 모두 빠져버리는 듯했다. 내 것이 아니라하면서도 짐짓 걸어놓고 있던 무지개가 속절없이 사라진 것이었다.

“어디로 갔는지는 저도 잘 모르고요. 참, 사장님 말씀이 그분 찾는 사람이나 전화 오면 연락처를 알아두라고 하셨는데 누구시죠?”

순간 양지는 망설였다. 떳떳하게 자신을 못 밝힐 이유도 없지만 굳이 밝히고 싶은 마음이 사라졌다.

“예, 그건 제가 알아서 연락할께요. 그럼 병훈씨 연락처나 좀 알려주세요. 아직 강원도에 계신가요?”

“어머 아직 모르고 계시나 보네. 그분 이십 일 후에 결혼해요. 멋진 아가씨하고. 지금 예식장 예약하고 드레스 보러 가셨는데요”

“미스 김 하고요?”

“예 그래요. 그 분들 잘 아세요?”

순간 양지의 손에서 수화기가 떨어졌다.

양지는 한동안 멍한 채 그냥 아무 생각도 없이 있었다. 싫다 싫다 거부하면서도 자신이 추 여사를 얼마나 의지하고 있었던지, 왜 좀 솔직하지 못했던지 후회해도 소용없는 순간이었다. 동향이라거나 성씨가 같다거나 보통의 사람들이 가까움을 느낄만한 아무런 이유도 없이 추 여사는 양지를 좋아했다. 죽은 딸 생각이 나서라는 이유를 붙였지만 양지는 그것마저 납득되지 않아 항상 어정쩡한 상태로 추 여사의 짝사랑 같은 관심을 받기만 했다. 이번에 치른 어머니의 장례마저 그들에게는 알리지 않았다.

추 여사가 강 사장을 떠났다. 양지는 믿기지 않는 상황을 납득하기 위해 그들의 관계를 되짚어 봤다. 신체의 일부처럼 단짝으로 여겼던 강 사장과 추 여사. 어떠한 이유로든 그들의 사이가 벌어져 결별이 있을 것이라고는 정말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 경상남도 진주시 남강로 1065 경남일보사
  • 대표전화 : 055-751-1000
  • 팩스 : 055-757-1722
  • 법인명 : (주)경남일보
  • 제호 : 경남일보 - 우리나라 최초의 지역신문
  • 등록번호 : 경남 가 00004
  • 등록일 : 1989-11-17
  • 발행일 : 1989-11-17
  • 발행인 : 고영진
  • 편집인 : 강동현
  • 고충처리인 : 최창민
  • 청소년보호책임자 : 김지원
  • 인터넷신문등록번호 : 경남, 아02576
  • 등록일자 : 2022년 12월13일
  • 발행·편집 : 고영진
  • 경남일보 - 우리나라 최초의 지역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경남일보 - 우리나라 최초의 지역신문. All rights reserved. mail to gnnews@gnnews.co.kr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