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17 (283)
[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17 (283)
  • 경남일보
  • 승인 2016.11.28 1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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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17 (283)

종교의 의미란 이런 것인가. 용연사로 가보자고 생각한 순간부터 부처님을 생각했다. 그러나 양지는 어릴 때 어머니를 따라서 절에 왔다가 산신각 벽면에 그려진 산신도를 보고 느꼈던 어쩌면 슬픈 것 같기도 하고 어쩌면 무서운 것 같기도 한 애매한 감정을 삭이지 못해 와락 울음을 터뜨려서 어머니를 당황하게 만들었던 일밖에 기억나는 것이 별로 없었다. 부처, 그가 인도의 어느 나라 왕자였으며 보장 되어있는 부귀영화를 버리고 생로병사의 인생고를 해탈하기 위한 수행의 길로 나섰다는 것도 책으로만 대했을 뿐 그 상식적인 반야심경 한 줄도 외우지를 못했다. 그저 나무아미타불이나 관세음보살이라는 문구만을 정확한 뜻도 모른 채 접해왔을 뿐.

산길은 전과 달리 자동차 한 대 지나갈 정도로 시멘트 포장이 되어 있었다. 비가 오면 흙길 여기저기로 도랑이 나서 불편하던 것에 비하면 무척 편리한 변화였다. 그러나 나무 등걸을 잡고 바위 등을 타고 넘으며 제물을 나르던 옛날에 비하면 기도하러 가는 정성은 훨씬 덜 신중할 것 같은 생각도 들었다.

요즘은 점점 절도 사업체고 승려도 직업화되고 있단다. 산골짝에 허름한 집 한 채 사서 부처상만 떡하니 모셔놓으면 구태여 오란 소리 안 해도 제 발로 와서 돈을 바치는 것 보면 사람이란 똑똑한 것 같아도 사실은 참 어리석고 모순적인 존재야. 언젠가 이름난 절로 관광을 다녀오는 길에 현태가 이죽거리자 양지는 왠지 불경스러운 생각이 들어 그의 등을 쳐서 말을 잘랐던 기억이 났다.

산굽이를 얼마큼 돌았을 때였다. 부리나케 달려내려 오던 승용차 한 대가 비켜선 양지를 지나 저쯤 내려가다가 섰다. 차문이 열리더니 양쪽으로 늙고 젊은 남자 둘이 양지를 향해 고개를 내밀었다.

“저기 어디서 사람 하나 못 봤어요? 검은 옷을 입은 여자-”

양지는 고개를 저었다. 햐, 그것참. 그런 낭패스러움이 역력한 표정으로 문을 닫은 사람들은 비탈길을 빠르게 감돌아 사라졌다. 그들의 동작에서는 이렇게 고즈넉하고 청량한 길에 도무지 어울리지 않는 허둥거림이 드러났다.

좀 전에 보았던 사람들의 당황스럽던 분위기와는 달리 절간은 적요한 산바람에 묻혀 있었다. 서툰 지우개질로 지우다 만듯한 낡은 단청의 흔적만 아니라면 산골에 자리 잡고 있는 정갈한 여염집과 별로 다를 바 없는 규모인데 왠지 거기 어려 있는 침묵은 철학자의 명상처럼 무게를 지니고 있다.

대웅전 신축 기와불사 접수 받습니다. 양지는 쌓여있는 기와 앞에 세워져 있는 팻말의 흰 글씨를 읽으며 육이오 때 불타버린 대웅전 대신 임시로 마련되어 있는 작은 법당을 올려다보았다. 영화롭던 시절에는 화주를 맡았던 집안이었으나 이제는 기도를 드리러 올 어머니마저 이 세상 사람이 아니다. 양지는 옛날에 어머니가 하던 대로 당간지주가 서 있던 자리에 놓여있는 주춧돌에다 꽃다발을 정히 놓고 두 손을 모아 합장을 했다. 의미에 부합되기로는 아무래도 어색한 몸짓이었으나 어느새 그녀는 기억 속의 동작을 따라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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