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돌아보기
김성영(시조시인·고금논설학원 원장)
뒤돌아보기
김성영(시조시인·고금논설학원 원장)
  • 경남일보
  • 승인 2016.11.28 13:2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김성영
4년 전 한여름 휴전선 지척의 육군 현역병 4개월차인 큰아들을 면회갔었다. 하루를 함께 지내고 부대 정문에서 작별 인사를 하고는 마중 나온 선임병쪽으로 성큼성큼 걸어가던 아들이 문득 뒤돌아보더니 되돌아와서 제 엄마를 껴안았다. 아들의 어깨 너머로 아내의 눈물이 보였다. 다시 돌아서서 선임병쪽으로 걸어간 아들이 반소매로 얼굴을 가로로 스윽 닦고, 선임병이 아들의 어깨를 토닥이는 모습이 보였다. 아들은 그때 왜 뒤돌아보았을까.

45년 전 가난한 농가의 초등학교 6학년이던 3월 초순 어느 날, 나는 마루에 준비돼 있는 초라한 도시락을 외면한 채 집을 빠져나왔다. 도망치듯 마을을 벗어나는데 뒤쪽에서 매서운 북풍을 뚫고 귓전에 와 닿는, 날 부르는 어머니의 목소리… 뒤돌아서지 않을 수 없었다. 어머니의 숨찬 호흡이 쓰러지듯 나의 폐부를 향해 달려왔다. 도시락을 받아든 나는 매서운 북풍을 안고 울면서 학교로 갔다. 그때 어머니 목소리를 끝까지 배반하지 않고 뒤돌아본 것은 얼마나 다행이었던가.

어머니께서는 올 초봄에 췌장암 진단을 받고 한여름에 딴 세상으로 거처를 옮기셨다. 시시각각 이별이 다가오던 초여름 어느 날 썼던 미발표 시조 한 수를 어머니께 바친다.

‘드디어 때가 왔네/그녀, 강을 건너려 하네/천 겁 하늘이 맺어준 운명의 첫사랑이/안고 온 숙명이라며 이별을 받으라 하네//혹한 혹서 평생 입고 일편단심 꽃씨를 심던/그녀 가슴에 발 묻은 못, 목을 놓을까 두려워서/남몰래 벙어리뻐꾸기 미리 조금씩 늘키고 있네//시간의 모래 흘러가는 강의 저쪽 언덕에/그림처럼 꿈처럼 운두준이 펼쳐지면/나 거기 적묵 담채로 깃들 날 언제 올까//나보다 먼저 그녀 사랑한 강 저쪽의 그리움이/췌장 깊이 사무쳐 내 질투도 속절없이/내 눈물 어루만지고/야윈 그녀, 돌아서네 <‘강가에서’ 전문>’

뒤돌아보기는 단순한 과거 집착이 아니라 소중한 것을 소중히 여기는 일이다. 순수한 초심과 근본, 풋풋한 사랑, 느림의 즐거움, 뒤처진 이와 부축하는 이, 희생하고 소멸한 것들의 흔적… 잊고 싶은 것도 앞만 보며 외면하기보다는 뒤돌아보고 화해하거나 교훈으로 삼아야 한다. 모두 자기 삶의 역사요 정체성이므로.
 
김성영(시조시인·고금논설학원 원장)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 경상남도 진주시 남강로 1065 경남일보사
  • 대표전화 : 055-751-1000
  • 팩스 : 055-757-1722
  • 법인명 : (주)경남일보
  • 제호 : 경남일보 - 우리나라 최초의 지역신문
  • 등록번호 : 경남 가 00004
  • 등록일 : 1989-11-17
  • 발행일 : 1989-11-17
  • 발행인 : 고영진
  • 편집인 : 강동현
  • 고충처리인 : 최창민
  • 청소년보호책임자 : 김지원
  • 인터넷신문등록번호 : 경남, 아02576
  • 등록일자 : 2022년 12월13일
  • 발행·편집 : 고영진
  • 경남일보 - 우리나라 최초의 지역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경남일보 - 우리나라 최초의 지역신문. All rights reserved. mail to gnnews@gnnews.co.kr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