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17 (287)
[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17 (287)
  • 경남일보
  • 승인 2016.11.29 18: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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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17 (287)

샘가를 벗어나 돌 틈을 타고 내려오던 양지는 흠칫 놀라며 온몸이 굳어 붙는 듯 한 전율을 느꼈다. 언뜻 무엇인가 검은 물체가 움직이는 것을 발견했던 것이다. 싸리나무와 억새가 무더기져있는 곳이었다. 짐승일까. 산짐승이라면 경계심이 안 느껴지게 움직임이 둔했다. 앓는 산돼지일까. 양지는 나름대로 추리를 하며 이쪽을 보고 놀란 산짐승이 달아날 기회를 주느라 동작을 멈추고 기다렸다. 그러나 더 이상의 기척은 보이지 않았다.

혹시 바람을 탄 검은 비닐이 나뭇가지에 걸려 움직임을 멈춘 것일지도 몰라. 양지는 지나치게 적막한 산기운에 젖어 어느 결에 주눅 들어 있었던 자신의 담력에 쓴웃음을 지으며 움츠렸던 몸을 움직였다. 자신을 놀라게 했던 그 괴이한 물건부터 확인을 할양 그쪽으로 다가가던 그녀는 다시 심호흡을 멈추고 말았다.

사람 하나가 하늘을 바라보는 자세로 누워 있었다. 좀 전에 움직임을 보았던 것으로 봐서 죽은 사람은 아니었다. 소리도 냄새도 그 쪽에서 건너오는 기척은 아무 것도 없었지만 시체와 맞닥뜨린 것은 아니라는 확신이 있었다. 왜 저 사람이 여기 이러고 있을까. 양지는 제가 안고 있는 두려움을 쫓기 위해 먼저 신호를 보냈다.

“여보세요”

양지는 조였던 가슴을 풀고 심호흡을 뱉어냈다. 상대방이 뻐끔하게 눈을 떴던 것이다.

“왜 그러고 계세요. 어디 편찮으신가요?”

양지가 다가가자 쉿, 입술에 댄 희고 긴 손가락이 보였다. 초췌하게 보이는 긴 얼굴에 퀭하게 큰 눈만 내놓고 전신을 검은 옷과 검은 색 스카프로 감싸고 있는 여자였다.

“끝까지 말썽이군”

여자가 기분 나쁜 듯 중얼거리며 상체를 일으켰다. 사람을 피하고 있었던 모양, 양지에게 들키지 않으려고 다시 몸을 뉘여 기척을 죽이고 있었던 것이 분명했다.

“왜 그러세요. 모두들 찾고 있는 것 같던데”

같은 여자라 더 이상 물리적인 두려움을 느낄 필요가 없어진 양지는 급하게 산 아래로 내려간 승용차를 상기하며 관심 있는 눈길로 여자의 전신을 살폈다. 일어서려던 여자가 코트 깃에 감추고 있던 가위를 떨어뜨리며 양지를 얼른 흘겼다. 그 서슬에 머리에 둘린 스카프 사이로 함부로 자르다 뭉쳐 올렸던 긴 머리카락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찾고 숨는 상태에서 뭔가 모를 급박한 상황이 전개되고 있음이었다. 양지는 어떻게 라는 생각도 없이 여자에게로 제지의 손길을 내밀었다.

“머리를 자르고 계셨군요. 왜 이러세요. 모르기는 하지만 지금 중대한 일을 저지르고 계시는 것 같은데-”

“상관하지 마. 너 같은 것들이 어떻게 내 심정을 알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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