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17 (287)
샘가를 벗어나 돌 틈을 타고 내려오던 양지는 흠칫 놀라며 온몸이 굳어 붙는 듯 한 전율을 느꼈다. 언뜻 무엇인가 검은 물체가 움직이는 것을 발견했던 것이다. 싸리나무와 억새가 무더기져있는 곳이었다. 짐승일까. 산짐승이라면 경계심이 안 느껴지게 움직임이 둔했다. 앓는 산돼지일까. 양지는 나름대로 추리를 하며 이쪽을 보고 놀란 산짐승이 달아날 기회를 주느라 동작을 멈추고 기다렸다. 그러나 더 이상의 기척은 보이지 않았다.
혹시 바람을 탄 검은 비닐이 나뭇가지에 걸려 움직임을 멈춘 것일지도 몰라. 양지는 지나치게 적막한 산기운에 젖어 어느 결에 주눅 들어 있었던 자신의 담력에 쓴웃음을 지으며 움츠렸던 몸을 움직였다. 자신을 놀라게 했던 그 괴이한 물건부터 확인을 할양 그쪽으로 다가가던 그녀는 다시 심호흡을 멈추고 말았다.
사람 하나가 하늘을 바라보는 자세로 누워 있었다. 좀 전에 움직임을 보았던 것으로 봐서 죽은 사람은 아니었다. 소리도 냄새도 그 쪽에서 건너오는 기척은 아무 것도 없었지만 시체와 맞닥뜨린 것은 아니라는 확신이 있었다. 왜 저 사람이 여기 이러고 있을까. 양지는 제가 안고 있는 두려움을 쫓기 위해 먼저 신호를 보냈다.
“여보세요”
양지는 조였던 가슴을 풀고 심호흡을 뱉어냈다. 상대방이 뻐끔하게 눈을 떴던 것이다.
양지가 다가가자 쉿, 입술에 댄 희고 긴 손가락이 보였다. 초췌하게 보이는 긴 얼굴에 퀭하게 큰 눈만 내놓고 전신을 검은 옷과 검은 색 스카프로 감싸고 있는 여자였다.
“끝까지 말썽이군”
여자가 기분 나쁜 듯 중얼거리며 상체를 일으켰다. 사람을 피하고 있었던 모양, 양지에게 들키지 않으려고 다시 몸을 뉘여 기척을 죽이고 있었던 것이 분명했다.
“왜 그러세요. 모두들 찾고 있는 것 같던데”
같은 여자라 더 이상 물리적인 두려움을 느낄 필요가 없어진 양지는 급하게 산 아래로 내려간 승용차를 상기하며 관심 있는 눈길로 여자의 전신을 살폈다. 일어서려던 여자가 코트 깃에 감추고 있던 가위를 떨어뜨리며 양지를 얼른 흘겼다. 그 서슬에 머리에 둘린 스카프 사이로 함부로 자르다 뭉쳐 올렸던 긴 머리카락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찾고 숨는 상태에서 뭔가 모를 급박한 상황이 전개되고 있음이었다. 양지는 어떻게 라는 생각도 없이 여자에게로 제지의 손길을 내밀었다.
“머리를 자르고 계셨군요. 왜 이러세요. 모르기는 하지만 지금 중대한 일을 저지르고 계시는 것 같은데-”
“상관하지 마. 너 같은 것들이 어떻게 내 심정을 알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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