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텔링이 있는 힐링여행] 주왕산 외씨버선길과 주산지
[스토리텔링이 있는 힐링여행] 주왕산 외씨버선길과 주산지
  • 김귀현
  • 승인 2016.12.04 1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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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산지에 자생하는 왕버들 모습.


◇주왕산 외씨버선 길

청송 주왕산에서 출발해서 영양, 봉화를 거쳐 영월 관풍헌까지 240㎞, 13구간 길로 되어 있는 힐링길이 외씨버선길이다. 청송에서 영월까지 지도에 나오는 길의 모양이 ‘얇은 사 하얀 고깔은 고이 접어서 나빌레라/소매는 길어서 하늘은 넓고, 돌아설 듯 날아가며 사뿐히 접어올린 외씨버선이여’라는 조지훈 시인의 시 ‘승무’에 나오는 ‘외씨버선’을 닮았다고 해서 외씨버선길이라고 이름을 붙였다고 한다. 외씨버선길 중 제1길인 청송 ‘주왕산·달기약수탕길’은 총 18.5㎞인데, 국민체력센터(원장 이준기) 명품 걷기 클럽인 ‘건강 하나 행복 둘’ 회원들과 함께한 이번 트레킹은 대전사에서 용연폭포까지 3.1㎞, 왕복 6.2㎞를 걷기로 했다.

진주에서 3시간 30분이나 걸려 청송 주왕산에 도착했다. 도착하자마자 계곡 트레킹을 시작했다. 계곡 트레킹은 여름철이 제격이다. 하지만 계곡을 낀 산길에 쌓인 낙엽과 겨울 초입인데도 철을 잊은 채 나뭇가지를 붙들고 있는 단풍잎이 맑은 계곡물에 비친 모습을 보면서 걷는 가을 끝자락의 계곡 트레킹, 여름에는 느낄 수 없는 색다른 분위기다. 낙엽과 계곡물소리에 취해서 걸어가다 고개를 들어 주왕산을 바라본 순간, 저절로 발걸음이 멈춰졌다. 산이 온통 한 떨기 바위꽃으로 피어 그 꽃이 하늘을 떠받들고 있는 형상이었다. 주왕산의 진면목을 바라보는 동시에 주왕산이 경상북도의 소금강이라고 불리는 이유를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대전사에서 500m 정도 계곡을 따라 걸어가니 주왕암과 주왕굴로 가는 샛길이 나왔다. 좁은 돌길을 따라 300m 정도 들어가자 주왕의 넋을 기리기 위해 세운 주왕암이 나타났다. 외씨버선길의 샛길에 있는 암자라서 그런지 탐방객들이 많지 않았고, 분위기도 무척 고즈넉했다. 암자를 지나자 협곡이 나타났다. 돌길 양켠으로 깎아지른 듯 서 있는 절벽엔 파란 돌이끼들이 탐방객들을 맞이해 주고 있었다. 철계단을 따라 끝까지 올라가니 주왕굴이 나왔다. 주왕굴 왼쪽에는 폭포수가 떨어지고 있었다. 떨어지는 폭포수가 커튼을 친 것처럼 굴을 살짝 가려주고 있는 모습이 신비로움을 자아내기도 했다.

 
▲ 거대한 바위 봉우리로 된 주왕산의 모습.


◇주왕의 원혼이 서린 이끼

중국 동진의 왕족인 주도가 스스로 후주천왕(後周天王)이라 칭하고 당나라의 수도인 장안으로 쳐들어갔으나 크게 패하여 쫓기다가 숨어 들어온 곳이 바로 이곳이다. 주왕은 주왕굴에서 재기를 다짐하며 은둔해 있었는데 당나라에서 주왕을 살해하라는 요청을 해오자, 신라 마일성 장군이 동굴 맞은편의 촛대봉에서 화살을 쏴서 주왕을 죽였다고 한다. 그때 주왕과 식솔들의 몸에서 흘린 피가 봄이 되면 수달래로 피어 협곡을 붉게 물들인다고 한다. 주왕이 은둔했던 산이라고 해서 고려초 나옹화상이 주왕산이라고 부르면 이 지역이 크게 융성해진다는 말에 따라 그때부터 주왕산이라 불렀다고 한다. 주왕굴에서 내려오면서 바라본 이끼는 처음 올라가면서 본 이끼와는 사뭇 달라 보였다. 억울하게 죽은 주왕의 원혼이 바위벽에 파랗게 이끼로 돋아나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다시 외씨버선길을 따라 시루를 닮은 시루봉과 학소대를 지나 제1폭포인 용추폭포에 이르자 계곡길을 가득 채운 사람들로 인해 발걸음을 옮기기조차 힘들 정도였다. 단애(斷崖) 사이로 난 용추협곡의 절경, 묵직한 베이스 목소리로 떨어지는 폭포수, 그리고 수많은 사람들이 어우러진 풍경 또한 하나의 장관을 연출하고 있었다. 제2폭포인 절구폭포는 수직절리에 의해 형성된 것으로써 그 형상이 무척 특이했다. 1단 폭포 아래에는 선녀탕 구혈이 있는데 그 형상이 절구모양이라 절구폭포라고 이름을 붙인 것 같다. 절구폭포에서 계곡길로 되돌아와서 400m 정도 더 올라가면 제3폭포인 용연폭포를 만난다. 세 개의 폭포 중 가장 웅장했다. 아쉽게도 외씨버선길 탐방은 용연폭포에서 발걸음을 되돌려야 했다. 길바닥 두껍게 깔린 낙엽들을 밟는 발걸음이 입동(立冬)이 한참 지난 초겨울 햇살처럼 따사로웠다.

 
▲ 숨어 지내던 주왕이 마지막 생을 마친 주왕굴.


◇신비의 연못, 주산지

뭐니뭐니해도 주왕산에서 가장 유명한 곳은 주산지다. 주왕산에서 버스로 20여분 정도 걸리는 거리에 신비의 연못인 주산지가 있다. 조선 경종 때 완공한 주산지는 아무리 가뭄이 들어도 바닥을 드러낸 적이 없다고 한다. 그리고 수령 300년 된 왕버들 20여 그루가 물속에서 자생하고 있어서 안개가 낀 날이면 그 신비로움을 더해 준다. 2003년에 제작한 김기덕 감독의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이라는 영화로 더욱 유명해진 곳이 주산지다.

‘어린 개구쟁이 시절 무심코 업보를 지은 동자승(봄), 산사에 요양하러 온 동갑내기 소녀를 사랑하며 애욕에 빠지게 되는 소년승(여름), 절을 떠난 후 십여 년 만에 배신한 아내를 죽인 살인범이 되어 산사로 도피해 들어와 반야심경 판각을 새기며 마음을 다스리는 남자(가을), 중년의 나이로 폐허가 된 산사로 돌아와 노승의 사리를 수습하고 겨울 산사에서 심신을 수련하는 남자(겨울), 묘령의 여인이 남기고 간 아이가 동자승이 되어, 노인이 된 남자가 어린 시절 했던 행위를 되풀이함(다시 봄)’

천진한 동자승이 일생 동안 겪은 파란만장한 삶의 윤회를 신비로운 호수 곁 암자의 아름다운 사계(四季)에 담아 그려놓은 서정적인 영화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 영화를 본 지 십여 년이 지났는데도 그때의 주산지 풍경과 천진난만한 동자승의 미소가 뇌리에 남아 있다. 한 편의 영화가 우리들에게 큰 감동을 주었다면 그 감동을 평생 잊지 않도록 아름다운 기억으로 각인시키는 것이 배경이다. 주산지가 바로 오랜 감동과 여운을 선물해 준 주인공이다. 우리들 가슴 속에 남아 있는 감동과 여운, 아픔이 자신을 사로잡고 있을 때마다 그것을 꺼내 보는 것은 아름다운 자연 속에서 힐링하는 것만큼이나 우리들의 정서를 아름답고 행복하게 한다.

/박종현(시인·경남과기대 청담사상연구소 연구원)



협곡으로 나 있는 계곡 트레킹 길.

주왕굴로 가는 협곡 절벽에 자란 이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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