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17 (289)
[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17 (289)
  • 경남일보
  • 승인 2016.11.29 18: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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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17 (289)

돈이면 단줄 알고. 여자의 표현은 놀라웠다. 돈이 있어야, 되도록 많이 있어야 된다는 신념을 깨뜨리는 도도한 파격이다. 격이 다른 여자에게서 문득 우아한 선망이 일었다. 모르긴 해도 꿈이 팔팔한 이 여류화가는 가족들이 몰아붙이는 정략결혼에 분개하며 저항하고 있음이다. 성남언니나 명자언니처럼 가족의 시대를 살았던 과거에 비해 딸도 어느덧 자신의 삶과 가치 기준을 따지며 개인의 기치를 드높이는 시대로 접어들었다. 양지가 다시 궁금한 사항이 든 아쉬운 눈길을 보내자 여자는 귀찮은 듯이 벌떡 일어나 옷에 묻은 흙부스러기를 털어내며 저쪽 바위너설을 잡고 기어올라 가버렸다.

삶의 가치. 진정한 무엇이 삶의 가치일까. 양지는 여자가 사라진 숲을 훑어보면서 소리 없이 음미했지만 뇌리에 박힌 신선한 의미의 꼬투리는 쉽게 풀리지 않았다. 하지만 삽화처럼 짧은 만남의 여운은 귀한 음식을 대접받은 것처럼 충만하고 뿌듯하게 피톨에 실려 퍼졌다.

냇가에서 이쪽으로 올라가면 공양간 뒤를 돌아 절 마당으로 들어가는 길이 있을 것이건만 양지는 다시 절로 들어 갈 마음이 나지 않았다. 어릴 때 죽은 자식의 넋에 홀려서 헌옷뭉치를 아이처럼 업고 사는 실성기 있던 공양보살은 아직도 거기 가마솥 앞에 쭈그리고 앉아 불을 때고 있을까. 분주한 발길을 이리저리 피해가며 노래하듯 청을 돋우어서 관세음보살을 외고 있을까. 궁금증이 문득 일었으나 그것을 확인하기 위해 다시 절로 올라 갈 마음은 생기지 않아 내처 사문을 빠져나왔다.

절 어귀를 나오자 뜻밖에도 고종오빠가 마중 온 사람처럼 허허 웃으며 마주 오다가 손에 들린 제기를 보고 물었다.

“손에 그건 ㅤㅁㅞㄴ고?”

이물이기에 먼저 눈길을 끌었나보다. 양지는 머리 깎다 들킨 여자의 이야기를 먼저 하고 싶었으나 엉뚱한 것이 먼저 화제를 만들었다. 양지는 아무 말 없이 제기를 내밀었다. 오빠의 반응은 의외였다.

“그걸 어떻게 발견 했구나”

“알고 계셨어요?”

“언젠가 숙모님이 그러시데. 여기 산신령님께 늘 당신이 만약 아들만 낳게 해주신다면 멋지게 산신각을 지어 올리겠다며 소원을 빌었다고.”

양지는 오빠가 그 말만은 되새기지 말기를 바랐다. 귀도 눈도 닫아 버리고 싶었다. 그때 어디선가 까작까작, 산 까치가 요란하게 지저귀는 소리가 났다. 까치는 영물이라고 어머니는 말했다. 까치가 오면 반가운 손님이 오신다는데 하면서 까치가 와서 우짖기만 하면 꿈꾸는 아득한 눈길로 먼데를 바라보곤 했다. 까치도 어머니의 신이었을지 모른다. 그렇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은 어머니의 기원은 어느 허공을 메아리로 떠돌고만 있는지. 양지는 우묵하게 패인 흙구덩이에다 제기를 놓고 돌과 흙을 덮어서 깊이 묻었다. 뜻을 짐작하겠다는 표정으로 지켜보던 오빠가 흙 묻은 손을 털며 일어서는 양지에게 입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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