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17 (291)
[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17 (291)
  • 경남일보
  • 승인 2016.11.29 18: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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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17 (291)

고종오빠 장현동은 오토바이 열쇠를 주머니에서 꺼내며 듣기에 따라 예사롭지 않은 말을 흘렸다. 서먹하던 사이가 많이 달큰해진 느낌을 받은 양지는 고종오빠와의 대화에 재미를 붙였다.

“참, 오빠가 장학사업도 하신다는 소리 들었어요.”

“쑥스럽게 소문부터 났어. 아직 규모도 작고 시작에 불과한데.”

“그렇지만 아무나 마음을 내고 실천할 수 있는 일은 아니잖아요.”

오빠가 그 말에 느닷없는 웃음을 터뜨렸다.

“내 출신이 뭐냐? 돈이 양반인 세상에, 백정이니 뭐니 하는 소리가 쏙 들어가고 이 좋은 세상에 돈 잘 버는 직업 가졌다꼬 장 사장, 장 사장하는 소리 듣는데 양반 노릇도 좀 해야 안되겄나.”

“오빠가 그런 유머도 하세요?”

“알고 보면 나도 재미있는 남자라고. 허허허…….”

그의 말을 새김질하며 양지도 덩달아서 웃었다. 뜻있는 삶을 추구하는 속 깊은 사람, 이런 이를 오빠라 부르며 곁에서 믿고 의지할 수 있는 것이 배부른 듯이 아주 좋았다.



용연사를 찾기 잘했다는, 깊이 모를 흔쾌함을 안고 오빠가 만들어 주는 오토바이의 뒷좌석에 앉으려다 말고 양지는 응석부리듯 내려섰다.

“어디로 무엇 하러 가는지 말해 주지 않으면 안 갈래요”

장현동도 웃으면서 그러나 조금 진지해지는 음성으로 양지의 응석을 받는다.

“역시 대꼬쟁이네, 우찌 그리 순순한가 싶었다. 그래 사실은, 과수원에 농막이 하나 있는데-”

내가 갈 곳이 없자 거기 와 있으라는 거구나. 고종오빠의 말뜻을 지레짐작한 양지의 안색이 확 바뀌었다. 내가 그렇게 가엾게 보이다니. 양지는 얼른 거짓말을 지어냈다.

“오빠, 저를 생각해 그러시는 것 같은데, 저 내일 갈 거예요. 회사에서 일이 있다고 어서 오라고 연락이 왔어요.”

“아, 동생이 무슨 말을 잘못 알아들은 모양인데, 그건 세를 줄 거야. 하도 아무 것도 없는 사람이 돼서 세를 받을 수 있을지 없을지는 모르지만 비워 두느니 어쩌겠어. 묵혀 두었던 집이 돼서 여기저기 손 볼 것도 많은데 집사람은 가게를 봐야하고, 손이 돌아가야 말이지”

그렇다면 풀칠하고 도배하는 것 정도겠지, 양지는 순순히 오빠를 따르기로 했다. 시험을 하겠다는 애초의 말이 퍽 신선한 느낌으로 그녀의 마음을 끌기도 했다.

“잘 잡아”

부릉. 시동을 걸며 오빠가 주의를 주었다. 그렇지만 양지는 다른 여자들이 친한 남자의 허리를 꽉 끌어안듯이 할 수 없어 엉성하게 옷깃만 살짝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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