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위식의 기행 (88) 영축산 자장암
윤위식의 기행 (88) 영축산 자장암
  • 경남일보
  • 승인 2016.12.05 0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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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두 장 달력이 달랑 한 장이 남아서 볼품없이 초라한데 뜨개실로 짠 모자와 목도리에 벙어리장갑을 끼고 승복을 입은 꼬마동자승은 제 키보다 더 큰 대빗자루를 끌고 일주문 아래서 방긋이 웃는다. 천진난만한 해맑은 모습이 연말의 아쉬움을 짓궂게도 서글프게 하여 입산수도를 위한 출가라도 하듯이 일상을 훨훨 털어버리고 집을 나섰다. 양산시가지의 끝자락이며 상가건물이 촘촘히도 즐비한 하북면의 날머리와 맞닿은 통도사 일주문인 매표소를 들어서자 짙푸른 솔숲이 끝 간곳을 알 수 없이 사방으로 뒤덮었다. 초입의 안내판에는 ‘무풍한송로’라 하여 찬바람에 흔들리는 소나무가 춤을 추는 듯하다는 길이라고 하였건만 바람이 없으니 흔들림이 없고 흔들림이 없으니 사방은 고요할 뿐 일렁거림은 오직 띄엄띄엄 오가는 탐방객일 뿐이다.

하늘을 뒤덮은 낙락장송의 솔가지 틈새를 뚫고 내리는 햇살은 눈부신 요술봉이 되어 오가는 사람들의 등에도 꽂히고 길에도 꽂히는데 아름드리 소나무둥치 사이사이로 천공의 햇살이 장관을 이룬다. 짙푸른 청솔가지 끝의 고고한 기품이 보고 싶어 청류교를 건너서 암자로 가는 길로 들어섰다. 널따란 주차장을 지나고부터 길이 높아지며 우거진 솔숲이 내려다보인다. 천년고찰 영축총림의 대가람 통도사는 솔숲에 묻혀 있고 길옆으로 비켜 앉은 작은 암자 보타암은 송진내음에 흠뻑 젖은 속객을 반긴다. 이끼 낀 층층석계를 올라 훤칠한 대문으로 들어서니 높다란 축대위로 ‘보타암’이라는 현판이 붙은 단청이 화려한 본존건물이 웅장하게 자리를 잡았다. 영축산 산문으로 들었으니 법당에 들여 헌향삼배의 예로서 입산신고를 가름했다. 법당 안팎이 어쩌면 이리도 정갈하단 말인가. 옆으로의 약사전으로 들어섰다. 미륵세계의 내음일까, 자비의 향기일까, 향 내음 말고도 또 다른 내음이 가슴깊이 스며들며 숨쉬기가 한결 부드럽다.

향불을 피우고 예를 올리며 천수를 줄여서라도 무병강녕만 주옵소서 하고 일어서니 탱화속의 보살님이 빙긋이 웃으신다. 계단을 쓸고 계신 비구니 노스님의 표정이 너무도 맑고 밝아서 말이라도 붙여볼까 했는데 얼른 핑계거리 삼고 “스님! 꽃이 피었네요.” 했더니 자상하게 일러주는 스님의 음성이 더없이 온유하고 정갈한 차림새에 고고한 품위가 고색창연 천년고찰 옛 내음과 어우러져 운치 어린 향기가 뜨락에 그윽한데 자주색 수련의 봉곳한 꽃망울이 홀로 솟아 초연하다. 스님께 손 모아서 꾸벅꾸벅 절을 하고 발길을 돌려 더 깊은 골의 암자를 찾아볼 요량으로 계곡을 따라 한참을 올랐는데 골짜기가 좁아지기는커녕 경사가 완만해지며 펑퍼짐한 들녘이 펼쳐지며 갈림길이 나왔다. 안내판은 요란하다. 백운암에서부터 비로암, 극락암, 반야암, 자장암, 금수암, 서축암, 안양암, ‘수도암’까지 아홉 암자는 오른쪽이고 백련암에서부터 옥련암, 사명암, 서운암까지는 왼쪽을 알리는 팔척장신의 안내판이 삐딱하게 버티고 서서 ‘입맛대로 고루시오’ 하고 배짱을 부린다.

갈림길 마주하니 갈 길이 막막하네.
무심한 뜬구름도 제 갈 길을 가건마는
스승은 간곳이 없어 갈 곳 몰라 헤맨다.


어린 시절에야 고무신짝 냅다 벗어던지면 족집게였었는데 내비게이션이 나오고부터는 고무신짝도 오작동만 할 것이고 얼핏 들은 소리가 기억나서 ‘서운암’ 이라는 안내판을 따랐다. 작은 모롱이를 돌아드니 바로 코앞이다. 주차장에 차를 세우니 이게 어찌된 일인가, 고색창연한 천년고찰이 고즈넉하게 앉았거니 했었는데 아름드리 장독들이 가로세로 줄을 지어 초겨울 햇볕 아래 끝도 없이 늘어서서 물결에 반사되는 햇빛같이 반짝인다. ‘서운암 된장’ 판매소에는 주문을 하느라고 아낙들이 줄을 섰고 건너편의 2층으로 삼천불전에 들어서면 삼천석좌불이 줄을 지어 끝이 없다. 삼삼은 구인데 구천 배를 줄여서 삼배로 가름하고 왔던 길을 돌아서서 바위구멍에 금개구리가 산다는 ‘자장암’으로 차를 몰았다.

금개구리의 법명이 금와(金蛙)보살이라는데 음력 시월보름이 달포나 지났으니 속계를 멀리하고 동안거에 들었을 게고 천오백년 거슬러서 자장율사를 친견하여 주권유린 국정농단 분기탱천 화난민심 이 난국을 어찌해야 국태민안 이룰까 하고 여쭤볼 요량으로 경사가 완만한 자드락의 산길을 따라 야트막한 고갯마루를 넘어서자 별천지가 펼쳐졌다. 광활한 분지가 깊은 골에 웬일인가, 고산준령 사방으로 병풍처럼 둘러치고 속세와 절연한 무릉도원 옛터일까, 만석지기 장자가 없는 듯이 살았을까, 드넓은 폐허는 옛 영화에 잠들었고 역사는 흔적 없고 초목은 말이 없어 가던 길을 재촉하여 계곡을 거슬러 끝자락에 닿으니까 자그마한 주차장이 마련돼 있다. 낙락장송 우거진 길을 따라 발치 아래의 계곡은 온통 반석으로 바닥을 깔았고 청정옥수 흐르는 물소리는 청아하고 낭랑하다.

층층석계를 밟고 오르니 돌 하나를 동그랗게 오려서 출입문을 내었는데 무지한 속객은 숨은 뜻은 알 수 없고 그저 모양새가 특이하여 의아한데 다가서는 일주문이 또 한 번 별나다. 돌 하나씩을 세워 양쪽 기둥으로 삼고 돌 하나를 걸쳐서 지붕으로 삼았으니 ‘일주석문’이라고 얼버무리며 안으로 들어섰다. 석벽 아래의 바위틈새를 메꾸어 깎아지른 암벽을 병풍처럼 두르고 낙락장송 그림자 아래서 작은 전각들이 마애삼존불의 커다란 암벽을 사이에 두고 날렵한 추녀를 아기자기하게 맞대고 있어 그림 같은 풍광의 멋스러운 운치가 황홀경을 이루니 불국의 정토인가 선경이요 비경이다. 작은 대문을 들어서면 본존법당은 관음전인데 방바닥에도 바윗돌이 솟아있고 마애삼존석불 뒤로 돌아들면 깎아지른 바윗면에 작은 구멍이 있어 찾는 이들이 눈을 붙이고 보고 또 보면서 지극한 정성으로 간절히 기도한다. 서기 646년 자장율사가 통도사의 창건에 앞서 수도를 하시며 손가락으로 바위에 구멍을 뚫어 금개구리를 살게 하셨다는 ‘금와공’이란다. 금와공 아래의 석간수는 돌문으로 닫혀 있고 부처님께 올리는 샘이라 일러준다.

웅장한 삼존마애석불 앞에 예를 갖추고 산령각과 함께한 자장전으로 들어섰다. 자장율사의 진영 아래서 헌향삼배의 예를 올렸다. 선덕여왕으로부터 대국통의 명호를 받은 계율학의 종조이신 율사는 지긋한 미소만 지으시며 사바세계를 지켜보고 계신데 타오르는 향불의 연기는 실오라기처럼 하늘거리고 서산에 지는 해는 영축산 너머로 뉘엿뉘엿 저문다.



자장암 매애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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