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17 (292)
[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17 (292)
  • 경남일보
  • 승인 2016.11.29 18: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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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17 (292)

요동이 심한 들길을 내닫기 시작하자 오토바이는 몇 번이나 기우뚱기우뚱 떨어뜨릴 듯이 몸의 균형을 분산시켰다. 바람에 헐렁거리는 옷깃은 아무리 손아귀에다 힘을 주어도 곧 옆으로 굴러 떨어질 듯 안정감이 없었다.

“꽉 잡으라니까”

오빠가 눈치를 챈 모양이었다. 이제야말로 시키는 대로하지 않는 것이 더 어색하게 될 것이다. 양지는 주의를 받은 서툰 견습공처럼 근육이 느껴지는 오빠의 양 옆구리를 두 손바닥으로 눌러 잡았다. 아무리 오빠라는 이름이 있지만 남자의 허리를 끌어안고 있는 자신의 변화 된 태도에 대한 쑥스러움이 문득 일었으나 앞사람의 체온에서 전달된 훈기가 바람에 할퀴고 있던 차가운 뺨을 따스하게 감싸주는 것이 싫지는 않았다.

별로 오래 사귀지도 않은 사이였지만 오빠가 갖고 있는 온화함과 크게 느껴지는 품성은 양지가 가지고 있던 선입견이나 왜곡된 인식을 포용하고 남는 친화력이 있었다. 동시에 양지의 고독한 한쪽 마음을 꽉 채워 주는 묘한 든든함도 있었다. 잔뼈가 굵어지는 동안 익히고 실천해 온 종교적인 분위기일 수도 있겠으나 표 나게 부처님을 앞세운 권선의 법문 같은 걸 입에 올리지 않는 것도 거부감 없어 좋았다.

“여기서는 타고 가는 게 더 불편할 텐데 어쩔까?”

시의 외곽지대를 얼마큼 달려가다 여기도 심한 이농현상이 있었구나 싶은 어떤 어설픈 마을에 오빠는 멈추었다.

“앞으로 세멘 포장을 할까 생각 중이야”

오토바이를 내려서 마을 옆으로 뚫린 농로로 들어서자 경운기 등속의 자동차 바퀴자국이 얼었다 풀린 지표면에 어지럽게 찍혀 있는 게 보였다.

“요즘엔 역이농자도 많이 생긴다면서요?”

계속 입을 다물고 있기 어색했던 양지는 분위기를 만들 양 신문에서 읽은 기사를 인용했다.

“이전에 대면 그런 셈이지만 꼭 그렇지도 안 해. 이 과수원만 해도 내 삼종이 부치던 건데 부산 가서 장사를 해보겠다고 넘겨준 기거든”

야트막한 두 등성이가 양팔로 감싸 안은 듯 우묵하고 질펀한 구릉지에는 여러 종류의 나무들이 식재한 연도대로 나이 먹은 티를 보이며 늘어서 있다. 어느 것이 배나무인지 어느 것이 단감나무인지 꾀벗은 나목으로는 쉽게 구별이 안 된다. 높다란 언덕에 있는 밤나무는 알겠다. 바람이 잘 통하는 위치에 있는 대추나무도 알겠다. 둘러보니 여기서 살아보고 싶은 나무는 다 살아라, 하는 듯이 이것저것 생기는 대로 나무를 막 가져다 심은 인상이 짙다. 고수익을 목표로 하는 기업농장 냄새가 나지 않는 것이 여간 마음 편하지 않았다. 농로를 기점으로 저 아래쪽 감나무 위에서 전지를 하고 있던 인부 둘이 알은 체로 인사를 하자 오빠도 화답을 보냈다.

“오늘 다 안 되겠지요? 천천히 쉬어 가면서 조심해서 하세요.”

“예에, 맛 기똥차게 좋은 단감이 억수로 많이 열릴 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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