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물관 탐방기] 고성탈박물관
[박물관 탐방기] 고성탈박물관
  • 김영훈
  • 승인 2016.12.12 14:1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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액을 막고 잡귀를 물리치는 다채로운 탈바가지 향연
▲ 고성탈박물관 전경.
▲ 진주오광대에 사용되는 탈의 모양새.


보통 ‘탈’이라 하면 얼굴에 쓰는 것으로만 알고 있다. 하지만 발에 씌우는 탈, 신의 모습을 뜻하는 탈, 귀신을 쫓기 위한 탈, 장례식에 사용한 탈 등 탈의 종류는 다양하다.

사람들은 수천년 전부터 다양한 탈을 만들어 왔다. 지금의 탈은 단순히 얼굴을 가리는 가면으로 인식되고 있지만 탈이라는 것은 나쁜 액과 잡귀를 막기 위해 사람이 만든 모든 도구들을 포함하고 있다.

특히 탈은 우리 조상들의 생활 속에서 놀이와 신앙 등 여러 가지 형태로 역할을 해 왔다.

이처럼 다양한 종류와 모습으로 역할을 해 온 탈, 왜 만들어졌고 그 기원은 언제일까?

이를 알아보기 위해 고성군에 위치하고 있는 고성탈박물관을 찾았다.

 
▲ 고성박물관 진입로에 위치하고 있는 장승.


고성탈박물관은 다양한 탈을 전시하고 있어 탈의 의미와 역사를 한눈에 파악 할 수 있는 곳이다.

박물관을 탐방하기 위해 이곳을 찾으면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은 박물관 입구에 위치하고 있는 수십 개의 장승이다. 각기 다른 표정을 짓고 있는 이 장승들은 탈의 신앙적 의미를 보여주듯 방문객을 맞이하고 있다.

다양한 모양의 장승을 뒤로 하고 본격적인 탐방을 위해 박물관 내부로 들어서면 고성오광대 ‘말뚝이’가 호통함을 선보이며 탈이 갖는 상징성을 경험하게 해 준다.

말뚝이의 탈은 크고 힘 있는 젊은이를 표현하고 있는데 이는 탈놀음을 향유하는 주된 계층이 서민이었기 때문이다. 이들은 양반탈을 늙고 힘없는 노인으로 제작해 탈놀음을 통해 사회 부조리에 대한 풍자와 비판을 이야기 했다.

고성탈박물관의 첫 관문은 탈의 기원, 탈의 역사에 대해 소개하고 있다.

사람들이 탈을 사용한 것은 원시시대부터인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수렵이 일상이었던 원시시대는 사냥감에 쉽게 접근하기 위한 도구로 탈을 사용했다. 사냥 후에는 죽은 동물의 영혼을 위로하고 주술력을 몸에 지니기 위해 탈을 사용하기도 했다. 이후 사회의 발달로 주술적인 목적보다는 종교적 의식용, 연극적 수단으로 탈의 기능이 변모한 것이다.

 
▲ 한국 탈놀이에 나타나는 여성 이미지 ‘각시탈’ 특별전.


한국의 탈의 기원은 부산의 동삼동에서 출토된 조개탈 등으로 보아 신석기시대로 거슬러 올라갈 수 있고 청동시시대 암각화에서도 탈로 추정되는 그림이 발견됐다.

또 삼국사기와 최치원의 향악잡영(鄕藥雜詠)에도 탈놀이의 기록을 살펴 볼 수 있으며 조선후기에 들어오면서 서민의식의 향상으로 신앙적인 측면보다는 양반사회에 대한 풍자와 비판이 더욱 더해지면서 지금의 놀이 형태로 전해지고 있다.

고성박물관에는 탈의 역사와 함께 고성오광대 탈을 비롯 무형문화재에 쓰이는 다양한 탈을 전시하고 있다.

특히 고성지역에 걸맞게 고성오광대가 사용했던 탈들을 시대순으로 전시해 놓아 고성오광대에 대해 상세히 소개하고 있다.

고성오광대가 사용했던 탈은 ‘예능탈’로 분류하고 있는데 예능탈에는 춤을 출 때 얼굴에 쓰는 춤탈, 연극할 때 쓰는 연극탈, 민속놀이 할 때 쓰는 놀이탈 등이 있다.

 
▲ 사자 탈 등 은율탈춤에 사용하는 탈 모습.


예능탈과 함께 탈은 ‘신앙벽사탈’로도 구분된다. 신앙벽사탈은 어떤 소망을 기원하기도 하고 지킴이로써 받들기도 하는 것으로 일정한 장소에 두는 신성탈, 구나탈 등이 있고 귀신을 쫓는 의식에서는 사람의 얼굴에 직접 쓰기도 한다.

하지만 예능탈과 신앙벽사탈이라고 해서 완전히 분리되는 것은 아니다. 처용탈은 귀신을 쫓는 기능과 춤탈로 함께 분류되고 ‘소놀이굿’ 등에 등장하는 소, 거북 같은 탈은 신앙성을 지니면서도 연희성도 함께 지녀 복합성을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

고성오광대 등 무형문화재에 사용했던 탈을 감상한 이유에는 한국 탈놀이에 나타나는 여성 이미지를 확인할 수 있는 ‘각시탈’ 특별전이 관람객을 기다리고 있다.

이 특별전에는 각종 여성 탈에 대해 소개하고 있어 당시 여성들이 어떤 위치를 찾지 하고 있었는지 오랜 역사 속에서 여성 이미지가 어떻게 변화해 왔는지를 엿볼 수 있다.

이외도 고성탈박물관에는 탈을 만드는 과정에 대해 소개하고 직접 탈을 만들 수 있는 기회도 제공하고 있어 탈의 멋과 흥을 느낄 수 있다.

김영훈기자 hoon@gnnews.co.kr



고성오광대 ‘큰 어미 상여’ 모습.

기산오광대의 영노(맨왼쪽) 등 다양한 탈을 전시하고 있다.
1970년대 고성오광대 박탈 모양새.
1960년대 고성오광대 나무탈 모양새.

산대놀이 등 탈놀음에 사용된 탈의 모양새를 전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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