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장은 음식재료가 부족한 긴 겨울을 대비하는 한국인만의 독특한 문화다. 겨울 초입이면 집집마다 수십통에서 백여통까지 되는 배추를 절이고 양념해서 겨우내 보관해두고 먹을 김치를 담그는 김장문화(Kimjang, making and sharing kimchi)는 2013년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에 등재돼 세계의 문화적 자산으로 인정받았다.
요즘은 김장을 담그는 가구가 줄어들기도 했지만 대부분의 한국가정은 양이 줄여서라도 오래된 이 습관을 유지하고 있다.
김장은 이틀은 걸리는 큰 일이다. 쪼갠 배추를 4~5시간 소금물에 절여 씻어야 하고, 양념 준비도 하루전에 하는 것이 좋다. 고운 빛깔을 내려고 고춧가루 3종류를 섞어 쓰는 현숙씨는 전날 저녁에 양념재료를 모두 섞어 하룻밤 숙성시켰다. 고춧가루는 다른재료와 섞이면서 물기를 품어 적당히 불어나고, 맛과 향은 더 깊어진다.
요즘은 절임배추를 주문해서 김장을 담그는 집도 많다. 마당 없는 아파트에서는 부담스러운 배추를 절이고 씻는 일이 해결해주는 방법으로 인기가 높다. 직접 키운 배추를 소금물에 절이고 씻어 배달해주는 농가도 많아 절임배추도 믿을만하다. 절임배추를 사서 김장을 하더라도 양념은 하루 전에 해두는 것이 좋다.
나눠주고, 주문받아서 해주느라 올 겨울 벌써 몇차례 김장을 담았다는 현숙씨는 오늘이 올해 마지막 김장이라고 선언했다. 오늘은 현숙씨의 고교동기인 배혜숙씨와 현원당에서 음식과 차를 배우는 장독회 회원인 김미선씨가 일손을 거들러 왔다.
올해부터 김장을 안담근다고 했다가 현숙씨에게 불려왔다는 혜숙씨는 익숙한 솜씨로 김치 속에 넣을 재료를 순식간에 썰어냈다. 혜숙씨는 두 식구가 3월까지 먹을 요량으로 9포기면 충분하다고 한다. 수십통씩 김장을 담던 옛 문화가 조금씩 희석돼간다. 대신 사철 끊이지 않고 김치재료를 구할 수 있어 언제든 김치를 담가먹는 일이 어렵지 않다. 자운공방이라는 서각공방을 운영하는 미선씨는 장독회 회원이다. 매주 차나, 음식을 배우러 현원당을 찾는다. 오늘은 배추 50포기와 무 20개를 담글 예정인 현원당의 김장 대업에 일손을 보탰다.
배추는 물기를 빼느라 채반에 널려있고, 양념도 큰통으로 준비됐다. 숙성된 양념에 생굴을 한바가지 섞어서 싱싱한 맛을 더해준다. 아침나절 혜숙씨와 미선씨의 칼질 끝에 미나리, 갓, 대파에 채썰어 둔 더덕과 전날 절인 무채로 만든 김치속까지 김장김치를 무칠 준비가 완료됐다. 양념에 들어가는 더덕과 녹차는 김치가 오래돼도 너무 물러지지 않게 아삭함을 잡아준다.
50포기의 김장김치를 무칠 때 필요한 것이 하나 더 있다. 바쁜 손길만큼 흥겨운 수다. 집안 이야기, 친구 이야기, 모임 이야기가 한바탕 조화롭게 흐르고 나니 맛깔스런 빨간 양념을 배춧잎 사이마다 곱게 바르고 김치속을 품은 김치들이 김치통에 차곡차곡 쌓인다.
배추 50통에 간수 뺀 소금 10㎏을 써서 절인다. 절반 정도는 소금물을 만들고, 나머지는 배추에 직접 뿌린다. 배추를 소금물에 한번 담궜다 빼서 소금을 뿌려두고 한번 정도 뒤집어 소금기가 잘 배도록 5시간을 절였다 3~4번 씻는다. 현숙씨는 생김치용으로 4시간만 절인배추를 따로 챙겨뒀다. 1시간 차이인데 아삭함의 차이가 크다. 배추를 칼로 툭툭 썰어 넣고 양념에는 배와 사과를 채 썰어 넣고 남은 더덕과 갓을 보태 생김치를 무쳐낸다. 고소한 깨소금을 뿌려 아삭하고 싱싱한 단맛이 가득한 생김치를 차려낸 점심은 김장에서 빠질 수 없는 수육 한 접시로 든든하게 해결한다. 늦은 점심을 마치고 오후 일정으로 무김치를 담근다. 무를 둥근 모양 그대로 2㎝가량 두께로 썰어 양념에 무쳐서 통에 담으면 끝. 간단하게 담근 무김치는 바깥 장독대에 익혀뒀다가 한겨울 별미로 먹을 수 있다.
통마다 갈라 넣은 김치들을 갈무리하고 보니, 여기저기 배춧잎이 튀고 고추가루가 범벅이다. 온통 어질러진 김장뒷설거지도 모두 나서서 정리한다. 규모가 적어지는 추세라고는 해도 김장은 온가족이 나서야 할 큰 일이다. 점심나들이를 갔던 류회장도 돌아와 빗자루를 쥐었다. 바람들지 않게 꼭꼭 눌러넣은 김치통은 혜숙씨네로, 미선씨네로 그 맛을 나눠간다.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등재된 김장문화의 영문 표기에도 만들고 나눈다는 의미가 들어 있다. 김장 맛은 집안으로 내려오지만 이웃끼리 나눠먹는 나눔의 문화도 깃들어 있다. 연말이면 대규모 김장으로 어려운 이웃을 돕는 김장나눔 행사 줄줄이 이어져 나눔의 김장문화를 더욱 돋보이게 한다. 유난히 화창한 햇살이 물청소한 현숙씨네 마루로 길게 들어오는 오후. 달콤하고 얼얼한 생강차 한잔이 현원당 김장에 마침표를 찍었다.
김지원·박현영 미디어기자
현숙씨네 김장 영상으로 보기
<현원당 김장 따라하기>
A 양념만들기
매운맛과 색깔을 책임질 고춧가루 3종 합쳐 15근
(보통 고춧가루 10근, 한단계 덜 갈아낸 굵은 고춧가루 3근, 매운고추로 만든 고춧가루 500g)
싱싱한 바다의 맛으로 김치맛을 업그레이드 시켜주는 청각 2㎏은 칼로 탕탕탕 쳐서 준비한다.(잘 잘려지지 않아 썰기보다는 두드리는 것이 낫다.)
이 많은 재료들을 조화롭게 엮어줄 감칠맛의 대명사 매실청 1대접
과일맛으로 달콤함을 더해줄 배 1개, 사과 8개는 채썰어서 합체
현원당의 김장김치 비법 녹차 80g(잎차)
팔방미인 육수(4ℓ)와 함께 곱게 갈아줄 양념들.
생강은 듬뿍 1000g, 마늘은 생각보다 많지 않게 500g, 고추를 또요? 홍고추 500g, 양파 2개도 갈아서 더하고, 단호박 1개와 단감 10개를 일단 찐 다음 갈아서 보탠다. 김장용 작은 조기(500g)를 뼈째로 드르륵 갈아주고, 생새우 500g도 매정하게 갈아버린다.
무 10개를 채썰어 죽염을 톡톡 뿌려두면 저절로 배어나오는 무즙 3대접을 양념에 더하고, 무채는 김치속으로 쓴다.
이 모든 양념재료는 큰 통에 넣고 잘 섞어서 하룻밤 재워둔다.
B 배추 준비
1.수확한 배추를 흙과 누런 잎을 떼어내고 네쪽, 또는 두쪽으로 쪼갠다.
2.배추를 소금물에 담궈 5시간 동안 절인다.
3.절인 배추를 꺼내 쓴맛이 나는 뿌리부분은 적당히 잘라낸다.
4.절인 배추는 찬물에 3~4번 씻어서 남은 소금기를 씻어낸다.
5.잘 씻은 배추를 채반에 널어 물기를 뺀다.
C 김치 속 만들기
미나리 3단 잘게 썰기(청도 미나리를 잎까지 잘게 썰어서 쓴다.)
갓 1단 잘게 썰기(청갓이 좋다. 현숙씨는 집에서 키운 자주색 갓을 썼다.)
더덕 1㎏ 채썰기
대파 18~20뿌리 정도 잘게 썰기
무 10개분량의 무채(전날 썰어서 죽염에 살짝 절인것)
김치양념을 조금 넣어 잘 무쳐지도록 섞어둔다.
D 김장담그기
1.준비한 양념 A를 배추 B에 바른다. 배추에 양념을 바를 때는 잎사귀 안쪽까지 골고루 바른다.
2.양념바른 배추에 김치속 C를 듬성듬성 채워 넣는다.
3.겉장으로 김치를 감싸 공기를 막아준다.
4.통에 차곡차곡 채워 비닐로 위를 덮어서 뚜껑을 덮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