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국회에서 박근혜 대통령 탄핵이 가결됐다. 지금까지 날마다 폭로된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의 범죄 사실들은 그 내용이 너무나 어처구니가 없어 보도를 지켜보는 우리들은 울지도 웃지도 못하는 심정이 된다.
그 중에서도 최근에 보도된,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 당일 대통령이 관저에서 올림머리를 하고 있었다는 소식은 충격적이었다. 더 충격적인 것은 300여 명의 국민이 침몰하는 배에 갇혀 죽어가고 있는데 머리 손질을 할 여유를 부리고 있었다는 점이다. 어떤 이는 성형시술을 하고 있었다든가 하는 추측성 보도가 사실로 밝혀지는 것이 차라리 더 낫겠다고 한다. 그렇다면 자신의 의지로 어떤 일을 할 수 없었던 상황이라는 핑계가 남아 있어서 맑은 정신이었다면 다르게 행동했으리라는 기대가 가능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맑은 정신으로, 그것도 오전 11시경 세월호가 침몰됐고 그 배 안에 315명의 사람들이 남아 있다는 사실을 보고받고도 어떻게 자신의 머리를 단장할 생각을 할 수 있었는지는 도무지 이해를 할 수 없다. 국가의 안전을 책임진 대통령이라면 만사를 제쳐두고 대책을 마련하기 위해 동분서주해야 할 그 시간에 어떻게 자신의 머리 손질을 생각할 수 있었는지 납득할 수가 없다.
그런데 대통령쪽에서는 이를 포함한 그날의 시간들을 ‘여성의 사생활’이라는 이름으로 감추려 하고 있다. 다시 말해 대통령이라는 직위에 있는 박근혜라는 사람이 저지른 일이지 여성 박근혜이기 때문에 일어난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러나 대통령을 보좌하면서 공모관계에 있었거나 대통령의 잘못을 묵인해왔던 남성 관료들은 그런 행태를 ‘여자의 사생활’이나 ‘내실에서 일어난 일’이라고 주장함으로써 ‘여성’이라는 대통령의 성별을 자신들과 범죄와 무능의 보호막으로 사용하고 그 뒤에 숨으려고 한다.
우리는 박근혜 대통령을 여성이기 때문에 선출한 것도 아니고 집권했던 4년여 세월 동안 여성으로서, 여성의 관점에서 어떤 정책을 결정하고 시행했다는 이야기를 들어본 적도 없다. 그런데도 대통령을 옹호하는 사람들도, 대통령을 비난하는 사람들도 대통령이 여성이라는 점을 강조한다. 그러나 사적인 관계를 통해 국정을 수행하고, 사적인 관계에 있는 사람이 국가의 모든 정책과 인사에 전횡을 휘두르게 방조한 책임은 그 두 사람이 여성이라는 점과는 전혀 상관이 없다. 이는 탐욕과 무지에 싸인 두 사람 혹은 일군의 사람들이 저지른 국가적인 범죄이다. 중요한 것은 그들이 사적인 이해관계를 위해 대한민국의 국정을 어지럽혔다는 사실이다.
사람들은 이구동성으로 ‘이제 시작이다’, ‘무엇보다 이 사태의 본질을 놓치지 않고 우리 사회의 근본적인 변화를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들 말한다. 대통령을 여성으로 환원해 여성대통령을 옹호하거나 비난하는 것 또한 본질을 흐리는 대표적인 언설이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의 본질을 놓치지 말고, 이 게이트가 일어날 수 있는 토양을 만들었던 우리 사회의 구조적인 문제들에 대한 논의가 깊어져야 할 때이다.
강문순(전 진주여성민우회 부설 성폭력상담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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