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17 (296)
[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17 (296)
  • 경남일보
  • 승인 2016.11.29 18: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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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17 (296)

“단박에 화해가 될 끼란 생각 안 해. 외숙님은 동생이 온 줄도 모르시니 그냥 가도 돼. 나도 아무 말 안 할 거니 깨”

가까워지는 아버지의 기척에 쫓겨 양지는 부엌으로 들어갔다. 뒤로 나가는 사잇문이 거기 있었다.

집 앞에서는 마중 나간 오빠와 아버지의 말소리가 어울리고 있었다.

“오늘은 날씨가 영 푹한 게 천상 봄이구먼. 천지자연은 못 쎄기는 기라”

“그래도 아직 겨울인데요.”

오빠의 목소리가 낮아졌다. 대신 아버지의 목소리가 상대적으로 커졌다.

“뭐 시간 맞차 약을 믹이라꼬 적어준 종이쪼가리가 있긴 한데 뭐 우짜란긴지 당최…”

검푸르게 짙은 향나무 가지 사이로 아버지의 모습이 보였다. 아이는 오빠가 받아 갔는지 양손에 든 짐을 추스르며 불안정하게 구부정한 걸음이다. 겨울 옷 차림이 다소 둔하기는 해도 생각보다는 덜 피폐해 보인다. 누군가를 보호해야 된다는 책임감에서 나온 결기인가.

돌에 걸린 아버지가 어이쿠, 소리를 내며 앞으로 뛰다가 넘어질 듯한 몸을 겨우 지탱하여 세운다. 서슬에 무언가 작은 빛을 내며 아버지의 얼굴에서 땅으로 떨어졌다. 꿍얼꿍얼 무슨 말인가를 중얼거리며 안경을 다시 집어서 낀 아버지는 고르지 못한 길을 걸어간다.



아버지의 여자가 젖먹이를 버리고 사라져 버렸다. 아무리 부인해도 그것은 현실이었다. 감기에 걸려 우유도 제대로 못 빨고 쌕쌕거리는 어린 것의 가쁜 숨결을 지켜 본 대책 없는 늙은 아비의 심정은 어땠을까. 설마 아버지가 어린 것을 끼고 있으리라고는 상상도 못했던 일이었다.

양지는 길을 가면서도 자신이 무슨 이유로 왜 이 길을 나섰는지도 모르겠는 거의 본능적인 동작만으로 걸음을 옮긴다.

“외숙님이 아이를 안고 엉거주춤 들어 서ㅤㅅㅣㅆ는디 하는 수 있어야제. 여관생활을 오래 권할 수도 없고”

“애를 젖 뗄 때까지는 키워주기로 했다면서요?”

“눈앞에 돈 있것다, 말이야 우선 뭐라꼬 몬하것노.”

“이 일은 처음부터 잘못된 일이었어요. 아버지는 사기를 당하신 거라구요.”

“어른이 고생하시게 된 걸 보면 잘됐다 할 수도 없지만, 새겨보면 또 굳이 못된 일도 아닌 것 같애. 어른이 그렇게 생기 있어 하시는 건 나도 만나고 나서 첨보거든.”

“지금 그 여자는 어디 있어요?”

“모르지. 내가 나서서 모들뜨기로 일 처리를 한 것도 아니고. 나는 외숙님하고 외숙모님이 서로 말씀하시기 불편한 것만 중간에서 심부름한 것밖에 없었는데, 지금은 외려 내가 조금 적극적으로 나섰을 걸 싶은 마음이 없는 것도 아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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