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논단] 각자도생의 시대와 선택
오창석(창원대학교 법학과 교수)
[아침논단] 각자도생의 시대와 선택
오창석(창원대학교 법학과 교수)
  • 경남일보
  • 승인 2016.12.18 1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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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년 연말이면 각종 기관이나 단체에서 한 해를 마무리하면서 ‘올해의 사자성어’를 발표해 왔는데, 그 중에서도 특히 교수신문이 뽑는 올해의 사자성어는 많은 이들이 인용하며 그 의미를 되새겨왔었다. 지난해 연말 교수신문이 뽑은 사자성어는 ‘어리석고 무능한 군주의 실정으로 세상이 마치 암흑에 뒤덮인 것처럼 온통 어지럽다’는 의미의 혼용무도였는데, 올해의 상황도 지난해보다 나아진 것이 없다. 그래서 올해에는 구직자와 직장인들이 올 한해 대한민국을 가장 잘 표현하는 사자성어로 ‘혼용무도’를 꼽았다.

여러 단체에서 선정한 올해의 사자성어 가운데 특히 눈에 띄는 것은 ‘각자가 스스로 살길을 모색할 수밖에 없다’는 의미의 ‘각자도생(各自圖生)’이다. 원래 ‘각자도생’이라는 말은 외국의 침략이나 자연재해 또는 재난상황에서 국가의 보호기능이나 재난구조시스템이 작동하지 않을 때 어쩔 수 없이 각자가 스스로 제 살길을 모색해야 한다는 의미인데, 각자도생의 길을 선택할 수밖에 없는 절망과 분노와 고통은 대부분 사회적 약자가 감당해야 할 몫이다. 2014년 세월호가 침몰하는 현장에도, 2015년 메르스 사태에도, 2016년 경주에서의 강진에서도, 최순실 사태로 일컬어지는 국정농단 사태 그 어디에도 국민이 믿을 국가는 없었다.

우리는 세월호 사태를 겪으면서 ‘가만히 있으라’는 지시를 따라서는 안 된다고 배웠고, 경주에서 발생한 대규모지진에서는 ‘생존배낭’을 꾸려야 한다는 것을 배웠다. 수많은 사건사고가 있을 때마다 수많은 대책들이 쏟아져 나오지만 정작 국민들이 필요할 때 국가 시스템은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 그렇기 때문에 국민들이 비상사태나 재난발생시에 스스로 살 길을 모색하는 각자도생의 길을 선택하는 것은 당연한 일일 것이다. 이러한 각자도생의 절박함은 올해의 영화 ‘부산행’ ‘터널’, ‘판도라’에서도 다시 한 번 확인되었다.

이러한 각자도생의 경향은 1990년대 말 경제위기를 겪으면서 이미 시작되었던 같다. 신자유주의적 시장논리가 팽배해지면서 우리나라는 약육강식의 시대로 접어들었고, 직장인들은 성과위주의 줄세우기의 희생양이 되었다. 뿐만 아니라 오랫동안 지속되는 경기침체, 극심한 취업난, 끝이 없을 것 같은 집값과 전세값의 폭등 등으로 인해 모든 구성원들은 조직 내에서 제 몸 사리기에 바쁠 수밖에 없었다. 냉혹한 현실 앞에서의 개인은 무기력해질 수밖에 없고, 주위의 따가운 눈총이나 비난을 받으며 문제점을 지적하기보다는 입을 닫고 조용히 소나기가 지나가기를 바라는 보신주의도 생겨났다. 그동안 자연스럽게 흘러온 일련의 과정이지만, 어쩌면 우리가 살고 있는 각자도생의 이 시대는 우리가 선택한 일일 수도 있을 것이다.

시스템이 작용하지 않으면 작용하게 해야 하고, 조직이 비리로 얼룩져 있다면 그 비리를 척결하고 재발방지에 힘써야 하는데, 그 역할을 담당해야 하는 것은 조직이 아니라 바로 현재 각자도행의 길을 가고 있는 모든 사람들이다. 어떤 조직이든 이해관계가 얽혀있기 마련이지만, 순간의 고통과 불편 때문에 문제제기를 포기하거나 또는 문제제기하는 사람을 비난하고 축출하는 행위가 공동체를 파멸의 길로 이끄는 것이다. 순간의 고통과 불편이 다르더라도 과감히 환부를 도려내고 그 조직이 제 기능을 다 수행할 수 있게 해야 한다.

자신만을 위한 각자도생이 아니라 조직과 사회, 그리고 국가가 제 기능을 다 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각 개인의 각자도생이 되기를 바란다. 갇힌 터널 속에서 혼자 굴을 파기보다는 같은 방향으로 함께 굴을 파는 연대 속의 각자도생이 되기를 바란다.
 
오창석(창원대학교 법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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