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17 (297)
[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17 (297)
  • 경남일보
  • 승인 2016.11.29 18: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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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17 (297)

양지는 말이 나오지 않았다. 속절없이 날아가 버린 돈 문제가 전부는 아니었다. 키울 사람이 없어진 것을 번연히 알면서 어머니와의 약속을 저버리고 제 속으로 낳은 자식을 그렇게 내팽개칠 수가 있는지, 아이를 버리고 간 여자의 모진 속셈이 이해되지 않았다.

양지가 여자를 찾아 나선 것은 덤터기로 앗겨버린 돈도 있지만 그 비정한 어미의 상호를 똑똑히 보고 싶은 분기가 앞섰다. 그러나 양지는 자신이 걸어왔던 인생길이 얼마나 환상적이고 표피적인 노선이었는지 나날이 새로운 깨달음의 장을 본다.

사는 것이 마음대로 안 된다는 말은 수없이 들었다. 그러나 귀로 들어서 저절로 외워진 말로만 이해했을 뿐 이렇게 참담한 현실을 체험하게 됐을 때의 느낌은 상상조차 해본바 없었다.

하기야 모성이 태곳적부터의 여성전용이던 시대는 이미 지나고 있음을 임신출산을 거부하고 애완용 동물 사육을 육아 대신으로 하고 있는 인텔리 여성들이 앞서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죽은 언니의 혼령과 여성의 자존심을 끌어안고 스스럼없이 죽음을 택한 어머니와 무관하지 않은 일이기에 양지의 놀라움은 비관적으로 확대될 수밖에 없었다.

무언가 새로운 흐름으로 인본도덕의 척도가 분열되고 있음이었다.

“동생은 그래도 원칙에 입각해서 세상을 바르게 볼라는 눈이 있어서 고맙구먼. 외숙님이나 돌아가신 외숙모님은 물론 장판에서 생고기를 팔아먹고 사는 나까지 아직 세상의 켯속을 너무 모르고 살았던 거라”

“몰라서 몰랐던 것이 아니라 알고 싶지 않은 벽을 쌓아놓고 고집을 부렸던 걸 거예요.”

“그럴지도 모르겠구먼.”

“엄마가 아픈 몸을 이끌고 가서 챙겨 온 돈을 당신의 용돈 하나도 안 떼고 다 넘긴 건 사기당하고 놀림 당하라고 드린 게 아니었잖아요.”

“그렇지. 그렇지만 속이자고 작정하면 못 속일 사람이 어딨겠노. 남한테 꼬치꼬치 따지지 못하는 외숙님 성격에 믿거라 하고 넘겼겠지. 자식을 같이 낳은 아비어미로서의 신뢰랄까 뭐 그런 감정으로. 그래도 영감님이 기력 안 줄고 아이 돌보시는 것 보니 자식이라는 게 저렇게 큰 힘이고 즐거움인가 싶더라니까.”

양지는 기우는 햇살을 올려보다가 시계를 보았다. 여자가 주방 일을 보고 있었다는 다방을 나선지 한 시간은 족히 넘었다. 가서 따진다고 돈이 돌아오리란 생각은 하지 않는 게 좋을 것이다. 고종오빠의 뜻만은 아니었다. 싸우러 가는 것도 아니었다. 그럼 무엇을 하러 가는가. 자신에게 물어보아도 대답은 애매했다. 그러나 그저 모른 척 넘어가서는 안 될 일이란 점만은 확실했다.

이만 돌아갈까. 몇 번 그런 생각이 들었으나 내친김이었고 껌을 깩깩 씹으며 다방 아가씨가 가르쳐준 선술집 골목으로 이미 들어서고 있었다.

“야이, 가스나야 지랄 그만하고 장사할 준비 안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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