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17 (301)
“여자가 보기는 참 순진해 보여요. 그렇지만 속하고 겉 다른 게 동물 중에 사람, 특히 여자라 안캅디꺼. 마 내말 참고해서 아예 포기하는 게 속 편할 깁니더. 자식은 셋이나 줄줄이 딸릿는데 빚 갚을 돈이나 남겨 놨겠소.“
그 여자에 대한 동정심인지 비아냥거림인지 모를 심정으로 사뭇 격앙된 여자들은 양지의 발길을 아예 그쪽에서 떼어놓을 작정이라도 한 것처럼 번갈아서 덧붙였다.
”장사도 밑천이 있어야 하는데 밑천이라고는 몸에 지닌 거 그것밖에 없고, 세상에 오죽 답답했으면 그런 짓을 벌릴라꼬 했을까, 참고 하이소“
양지는 올 때보다 발걸음이 무거워졌다. 갖고 나섰던 뜻이 무산될지 모르는 상황이었다. 양육비는 대드릴 테니 아이가 학교에 입학하도록 만이라도 길러 줄 수는 없습니까. 농막에서 아버지를 본 뒤에 가지고 온 생각은 그랬다. 그러나 들어보니 아이를 낳는다고 다 어머니라고 할 수는 없었다. 거기에 또 사연 복잡한 한 여자의 굴곡 많은 인생 역정이 개입되어 있었다. 내가 언제 아버지의 일에 이렇게 살뜰한 관심을 보였던가. 문득 어떤 열없음이 끼얹어졌다. 아버지 때문이기 보다는 세상에 태어났으니 살지 않을 수 없는 생명들이 겪어야하는 삶의 고통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양지는 사실 오빠 네의 농막에서 아이를 키우고 있는 아버지를 보고부터 아버지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 많이 달라져 감을 느꼈다. 아이는 죄가 없다. 자신의 원과는 상관없이 태어난 생명에 대한 책임은 어른들이 져야 마땅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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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식이네를 아세요? 아는 것이란 꼭대기 동네의 슈퍼 밖에 없어 높은 위치에 있는 동네의 슈퍼를 몇 개나 더텄다. 아버지나 고종오빠에게 물었으면 쉽게 찾을 수 있었겠지만 아무도 몰래 혼자 나선 길이니 전화번호도 약도도 없었다. 미로 찾기처럼 쉽지 않을 것은 이미 각오하고 있었으며 그녀의 성격은 시작한 일에 대해 끝장을 보고야 직성을 푼다.
‘부자네슈퍼’에서 미로는 끝이 났다. 그놈아 인식이 동생이 아까 여게 어데서 놀았는데, 구시렁거리며 가게에서 나온 주인여자가 저쪽 골목에서 또래의 아이들과 빈 캔을 따그랑땅땅 차며 놀고 있는 사내아이 하나를 손짓해서 불렀다.
”야야, 진식아. 너거 집에 어매 찾아온 사람이다“
”울 옴마 집에 없는데예“
지적을 받고 뛰어왔던 열 살이 채 안됐을 듯한 꼬마는 덕 되는 무슨 일이라도 있기를 기대하는 눈길로 양지의 위아래를 한 번 쓰윽 훑어본 뒤 제가 놀던 곳으로 다시 깡충깡충 뛰어 가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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