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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희근 교수의 慶南文壇, 그 뒤안길(405)<165>의로운 시인 윤동주와 경남의 인연(6)
김귀현  |  k2@g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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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6.12.22  22:05: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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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에서 말한 대로 윤동주의 육필 시고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는 정병욱이 학병에 나가면서 그 당시 부모님이 거주하던 전남 광양시 진월면 망덕리 자택에다 맡겨두고 떠났다. 이 망덕포구는 하동읍 바로 건너편인데 당시 할아버지와 아버지는 섬진강 포구 언저리에서 수산업을 하여 윤택한 살림을 모으고 있었다. 그러니까 하동과 광양은 이웃이고 같은 생활권이어서 내왕이 자유스러웠다.

이 망덕포구에서 당시 할아버지가 술도가집을 사서 운영하고 있었는데, 시골에서 양조장을 한다는 것은 그 동네의 일등 부자로 통하는 시절이었다. 물론 이때는 정병욱의 집은 하동이었다. 정병욱이 하동에서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부산 동래중학을 다닐 무렵에 양조장을 인수했던 것으로 보인다.

정병욱이 연희전문을 졸업(이 무렵 윤동주는 일본 유학)하고 학병에 끌려갈 때 윤동주의 원고를 소중히 싸서 어머니께 맡기면서 “어머니, 이 원고를 소중히 간수해 주세요. 만일 제가 전쟁에서 못 돌아오거나 동주가 돌아오지 못하면 원고를 연희전문대학에다 전해 주세요”하고 부탁드렸다. 다행히 정병욱은 목숨을 보존하여 집으로 돌아오자 어머니는 명주보자기에 싸서 보관한 원고를 내주며 기뻐하셨다는 것이다.

그런데 정병욱의 외동 누이동생인 정덕희(광복 후 윤일주와 결혼)는 그 원고를 장롱속에 감춘 것이 아니라 마루 밑 비밀 장소에다 감추어 둔 것이라고 증언했다. 그녀의 증언을 들어보자. “우리 집에선 귀중품을 마루밑에 둔 독에다 넣어 보관했어요. 내가 여고를 다닐 때에 방학에 집에 갔을 때에요. 아무도 집에 없을 때 어머니가 마루 밑을 열고 그 독 속의 물건들을 죄다 꺼내서 내게 보여 주시더군요. 내 혼수감으로 마련한 귀중품들도 그 속에 있었지요. 거기서 바로 윤동주의 원고본도 꺼내어 보여주시더군요. 그것하고 같이 또 오빠의 친구들이 이별할 때 오빠에게 써준 싸인북이 있었는데 그 속에는 일본글이 몇 자 적혀 있어서 읽어보았지요.”

이렇게 하여 윤동주의 유고는 그의 동생 일주의 손에 넘어갔고 이어 경향신문 기자 강처중은 광복후에 윤동주의 시 ‘쉽게 씌어진 시’, ‘또 다른 고향’, ‘소년’ 등을 잇달아 경향신문에 실었다. 윤동주가 유작으로 세상에 태어나는 기회를 맞이한 것이다. ‘쉽게 씌어진 시’가 경향신문에 실린 날은 1947년 2월 13일이었다. 이때는 윤동주가 후쿠오카 감옥에서 옥사(1945.2.16)한지 2년에서 3일 모자라는 때였다.

‘쉽게 씌어진 시’는 동경 릿교대학 시절에 씌어진 5편 가운데 한 편이다. “창밖에 밤비가 속살거려/ 육첩방은 남의 나라// 시인이란 슬픈 천명인줄 알면서도/ 한 줄 시를 적어볼까//땀내와 사랑내 포근히 풍긴/ 보내주신 학비 봉투를 받아// 대학노트를 끼고/ 늙은 교수의 강의 들어러 간다// 생각해 보면 어린 때 동무를/ 하나 둘, 죄다 잃어버리고/나는 무얼 바라/ 나는 다만 침전하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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