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18 (302)
[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18 (302)
  • 경남일보
  • 승인 2016.11.29 18: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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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18 (302)

약아빠진 것 같으면서도 나름대로의 심지가 드러나는 동작이었다. 고분고분 말을 듣지 않을 것 같은 녀석을 억지로 끌려면 호의를 보여야 한다. 양지는 손에 든 과자봉지를 내밀며 아이에게로 다가갔다.

“나 좀 너희 집에 데려다 주고 놀아”

“집에 가기 싫어요. 형아한테 혼난단 말요”

상을 찌푸리며 거부하는 녀석의 까만 눈동자가 겉모습보다 제법 귀염스럽게 맑다.

“집만 가르쳐주고 넌 돌아오면 되잖아”

“인식이하고 형아 빼끼 없다니까요”

“그래도 괜찮아. 아줌마가 너 좋아하는 것 선물 사줄게”

집요한 어른의 부탁에 마음이 여려진 건가. 양지는 머뭇거리는 녀석의 어깨를 밀며 가게 쪽으로 돌렸다. 녀석이 마지못한 듯 버팅 기던 어깨의 힘을 풀었다.

“갖고 싶은 대로 골라봐”

양지가 아이를 데리고 가게로 들어서자

“어이구, 저 말썽쟁이-”

하면서, 아이가 정말 말썽쟁이여서 인지 물건 하나를 멋지게 팔 것 같은 예감이 즐거워서 인지 가게주인이 진식의 머리통을 쥐어박는 시늉을 하며 양지에게 눈웃음을 보냈다. 진열대 앞으로 다가가는 녀석의 눈길이 부지런히 굴러다녔다.

“너 마음대로 뭐든 골라봐”

정말요? 하는 듯이 다시 한 번 양지를 돌아보며 싱긋 하얀 치아를 드러내 보인 아이는 평소에 미루어 놓았던 꿈이 많았던 듯 이것저것 손닿는 대로 분주히 아무거나 집어내어 살펴보다가 다시 올려놓기도 하면서 물건을 고르는 손길이 사뭇 재빠르고 기민해졌다.

이 모처럼의 기회를 어떻게 멋지게 활용하나, 아이는 잔머리를 굴리는 모양이다. 제법 돈이 들겠다 싶은 게임기를 이것저것 모양과 색깔 따라 만지작거리는가 하면 장난감을 들었다 놓기도 한다. 양지는 아이들이 이렇게 신중하게 물건을 고르리라는 것을 아직 생각해 본적 없었다. 슬그머니 미소가 지어지는 대로 아이의 하는 양을 처지도 잊은 채 지켜보고 있으려니 녀석은 다섯 개로 묶여져 있는 라면 한 묶음과 오징어 모양이 그려진 과자봉지 세 개를 들고 그녀를 말끄러미 올려보았다. 눈으로 대충 읽어도 기 천 원이면 될 것 같은 양이다.

“뭐 다른 건 더 없니?”

아이는 그렇게 무리를 할 수는 없잖아요, 라는 듯 암암한 표정으로 고개를 젓는다. 말썽쟁이라던 주인여자의 표현이 어디서 연유 된 건지 모를 일이다.

“뭐 더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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