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18 (303)
[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18 (303)
  • 경남일보
  • 승인 2016.11.29 18: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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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18 (303)

“냄편이 돈 한 푼 못 벌어들이는 바람둥이라서 그렇제 아아들 어매가 그리 막되게 키우지는 않심더”

아이가 내미는 물건을 대충 헤아리며 돈을 계산하던 주인여자가 양지의 의문을 풀어준다.

앞서는 아이를 따라 가게 문을 나서는데 저쪽 길에서 어떤 여자가 비틀배틀 다른 여자의 부축을 받으며 올라오는 게 보였다. 부축하는 쪽은 뭐라고 계속 무게 중심을 못 잡고 휘청거리는 상대방을 나무라고 있었다.

“아, 엄마다!”

짧은소리를 지른 진식이가 양지를 올려다보며 기색을 먼저 살폈다.

“너희 엄마니?”

“아줌마가 이것 갖고 가요”

고개를 끄덕거려 보인 아이는 라면과 과자가 든 꾸러미를 양지에게로 밀어준 뒤 어미의 눈을 피해 다른 길로 얼른 들어가 버렸다.

아이가 빼쪼롬 얼굴을 내밀고 숨어있는 담 모퉁이 앞으로 술이 취한 여자가 같은 또래 여자의 부축을 받으며 걸어와 양지의 앞까지 왔다. 저도 인간적인 양심은 있겠지. 양지는 인식엄마라는 여자와 맨송한 얼굴로 맞닥뜨리는 것보다 취한 모습이 차라리 덜 부담스러웠다. 상식은 언제나 적중하는 것이 아니었다. 인식엄마라는 여자는 보통으로 살찐 여염집의 아낙네보다 훨씬 더 몸피가 작았다. 저래서 그렇구나 싶게 양지가 품고 온 비인간적인 이상한 구석은 별로 느낄 수 없는 그저 생활고에 찌들어 있는 마르고 검은 작은 여자였다.

양지는 말없이 두 여자의 뒤를 따랐다. 얼마쯤 골목을 걸어 휘어진 곳을 돌아가다가 부축을 받던 사람도 부축을 하던 사람도 남의 집 담장을 의지하여 걸음을 멈추었다.



“야야, 인식아 너거 집 다 왔다.”

“알았다 인마, 내가 운제 술 무웃나.”

“그래 술은 안 묵어도 오징어볶음하고 쏘주 묵었제.”

“지랄한다. 남이야 쏘주를 묵든 막걸리를 묵든 니가 술 사좃나 와 시비고”

“그래 이년아, 시비다. 히히히 정신 차리고 여서부터는 니 혼자 걸어가라.”

“알았다. 그래 알았다. 내가 운재는 니보고 붙잡아 돌라카더나.”

“그래 니 말이 맞다. 내가 좋아서 한 일이다. 아아들 보는데서 제발 약한 꼴 보이지 마라. 이왕 지난 일은 지난 일이고 앞날이 문제 아이가. 표 없이 해라”

“그래 내가 와 약한 모습 보일 끼고. 누 좋으라꼬, 어림없다. 몹쓸 놈 개새끼. 내 자슥들 고이 품고 얼매나 잘 사는고 보이 줄끼다.”

“말은 좋다. 그렇지만 아아들이 눈 없는 줄 아나, 거죽이 아아라서 그렇제 요새 아아들 눈치는 어른 뺨치게 빠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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