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18 (305)
[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18 (305)
  • 경남일보
  • 승인 2016.11.29 18: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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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18 (305)

고종오빠는 그저 술 한 잔 마시고 싶을 때 어떻게 드나들게 된 술집에서 장난처럼, 은밀하게, 조심스럽게, 별스럽게 기대하지도 않았던 일이 그렇게 되었을 뿐이라고 말했기 때문에 양지의 뇌리에서 그 여자는 사람의 껍질을 썼으니 사람이지 윤리나 도덕이라고는 내팽개치고 사는 족속으로 그려져 있었다. 하지만 막된 세상을 아무리 저급하게 살고 있다하지만 저렇게 당돌하고 뻔뻔스럽게 나올 줄은 몰랐다. 힐난을 퍼붓는 쪽도 자신일 것이고 용서를 해도 자신이 하게 될 것으로 여겼던 것인데 도리어 양지 자신이 되밀리고 있었다.

“야이 잘난 년아, 니는 누고. 그 놈이 보냈나. 자식새끼들하고 내가 우찌 사는지 걸리 보고 오라카더나?”

떠안고 있는 라면 꾸러미를 아무렇게나 집어던진 여자가 양 허리에 손을 짚으며 양지를 향해 버티고 섰다. 역으로 손찌검이라도 할 듯 당당하고 도전적인 자세였다. 여자의 포악스런 소리를 듣고 사람들이라도 모여든다면 망신만 하게 될 것 같다. 아차, 실수였다. 양지는 욱하는 감정으로 자신이 너무 과격하게 나왔던 것을 깨달았다.

“우리 어디로 좀 가서 이야기해요”

“니년한테 내가 와 따라 갈 끼고”

“그래요, 내가 조금 성급했던 것 인정하니까 우리 어디로 가서 조용히 이야기 좀 해요”

“그 놈이 보냈나, 인자 와서 쓰파이 보냈나? 그리는 호락호락 안 될 끼다. 내 사는 기 그리 궁금하모 니 눈깔로 똑똑히 보고 가서 그 천하 잘난 잡놈한테 보고해라. 새끼 낳아서 판깨 지놈 없어도 목돈 벌어감서 잘 살더라 캐라.”

여자는 씩씩거리며 아무 것도 묻어있지 않은 옷의 아래위를 훑어서 몇 번 턴 뒤 앞장서서 굽어진 언덕길로 휑하게 걸어갔다. 빨리 따라가지 않으면 놓칠 것 같은 잰걸음이었다. 집들은 점점 키가 낮아지고 볼품없이 낡은 시멘트 담장의 그늘진 곳에는 이끼가 꺼멓게 터덜터덜 말라붙어 있는 냄새 나고 좁은 골목이었다. 얼룩덜룩하게 쌓여있는 쓰레기만이 도회의 일각임을 말해주는 외진 언덕에 낡은 집 두어 채가 쓰러지는 몸을 의지하며 붙어있었다. 그 중 뒷집 문으로 여자가 들어섰다. 여자가 들어서는 순간 짜증스럽게 울부짖는 사내아이의 목소리가 찌그러진 판자문짝을 넘어 꽥꽥 아무렇게나 쏟아져 나온다. 여자는 문간방의 방문을 벌컥 열어젖히며 소리부터 질렀다.

“또 이놈의 웬수녀러 종자들이 싸우고 지랄이다!”

여자가 연 방문 사이로 안을 바라보던 양지는 순간적으로 눈을 감았다. 쓰레기장을 연상시키는 어지러운 방안에 해골같이 여윈 얼굴의 아픈 아이가 누워있는데 다른 한 아이가 누워있는 그 아이에게 밥을 먹이고 있었던 모양이다. 그런데 누워있던 아이가 그만 먹는다고 했거나 처음부터 안 먹겠다고 버텨서 시중드는 아이의 울화를 돋운 것 같았다. 서 있는 아이의 손에서 날아 간 밥 양재기가 누워있는 아이의 얼굴에 부딪쳐서 굴러 떨어졌고 반찬물이 든 무수한 밥알이 누워있는 아이의 얼굴은 물론 온 방안에 흩어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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