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18 (306)
[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18 (306)
  • 경남일보
  • 승인 2016.11.29 18: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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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18 (306)

“야, 이놈들아 죽자. 우리 다 같이 죽자!”

불량스럽게 굴던 현장을 어미에게 들킨 당황함을 미처 지우지 못하고 서 있는 열 살 좀 넘은 듯한 사내아이를 여자가 끌어안고 엎어진 것은 거의 찰나적인 동작이었다. 여자는 미라처럼 누워있는 아이에게로 되엎어져 두 아이의 목을 조이면서 엎치락뒤치락 몸부림 쳤다.

“내가 전생에 무슨 죄를 그리 많이 지었노. 말 좀 해라. 내가 무슨 죄로 그리 많이 지었노 말이다!”

아이들이 막힌 숨을 캑캑거리고 있었지만 여자는 놓아주지 않았다. 밑에 깔린 아이의 얼굴은 거의 사색에 가깝도록 창백해지고 있었다. 아랑곳없이 넋두리를 늘어놓으며 그들을 놓아주지 않는 여자를 말리지 않으면 아픈 애가 큰일을 당할 것 같았다.

“이봐요, 진정해요. 애들을 놓아요. 애들이 숨 막혀 하잖아요.”

양지는 손가락이 부러질 것 같은 힘을 쏟아 의지대로 다하겠다고 버둥거리는 여자의 팔을 풀었다. 성한 아이가 재빨리 몸을 빼자 여자를 떼어내기는 쉬웠다. 양지가 밀치는 대로 벽에 처박힌 여자가 가쁜 숨을 토해내며 울음을 울기 시작했다.

“봐라 나 이 선미는 이런 꼬라지로 산다. 자식은 병들어서 죽어 가는데 서방은 계집질이나 하고 …. 내 딴에는 잘 키우고 싶었다. 돈이 있나 빽이 있나. 가진기라꼬는 내 몸띵이 빼끼 없는디 우짤끼고. 그래 맞다, 희귀병 든 큰자식을 구하기 위해 소 돼지도 아니면서 새끼를 낳아서 팔았다. 사기꾼년 더럽은 년이라꼬 쳐옇을라카모 쳐옇으라.”

자신이 누군지 밝히지도 않은 양지 앞에서 여자는 방언처럼 자신의 신세 한탄을 처절하게 쏟아냈다. 심한 양심가책에 시달리고 있음이었다.

헝클어진 머리카락 사이로 여성답지 않게 굵고 검은 눈썹이 작은 얼굴에 비해 기구한 그의 인생처럼 턱없는 부조화를 드러냈다. 함에도 울음을 뱉어내는 입술 사이로 하얗게 드러나는 고른 치아는 두엄 밭에서 주운 진주알갱이처럼 생경스럽도록 곱다.

여자의 울음이 좀체 잦아들지 않자 양지는 아수라장이 된 방에서 말없이 빠져 나왔다. 상한 짐승의 오열이 저러하리라. 그런 여자를 상대로 아버지가 당한 사기행각의 전말을 꺼내서 따져볼 것도 어불성설이다. 인간이 극한 상황에 놓이면 무슨 짓인들 못하리. 아픈 자식을 구하기 위해 새끼를 낳아 팔았다는 뼈아픈 여자의 넋두리가 양지를 따라오고 있었다.

이제는 집안일이면 크든 작든 독단적으로 처리 하지 않고 호남이와 의논을 해서 처리하리라던 양지의 결심은 또 무너졌다. 호남이가 이 일의 전말을 알면 펄쩍 뛰며 유전자 감식이라도 하자고 서둘 것은 분명했다. 만약 들은 소문대로 재수 없는 아버지가 사기를 당한 게 분명하다면 법을 앞세워서 짚고 넘어가는 것이 순서인 것은 당연했다. 아이를 돌려주고 법의 심판에다 여자를 맡기고 돈을 되돌려 받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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