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인의 의미
이예준 (지리산고등학교 교사)
타인의 의미
이예준 (지리산고등학교 교사)
  • 경남일보
  • 승인 2017.01.03 1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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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예준

지리산고등학교는 기숙사학교이다. 밤 10시30분에 점호를 하는데, 점호 때마다 선생님들이 전달하는 내용이 다르다. 나는 하루가 정리되는 시간이기 때문에 책에서 읽었던 좋은 구절이나 삶의 지혜, 생각해볼 문제 등을 이야기해 주려고 노력한다. 그날은 선후배 사이에 사소하고 잦은 마찰이 많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나는 그날 점호하기 전에 무슨 이야기를 해줄까 고민하던 중 예전에 읽었던 스티브 잡스의 유언과 신영복 교수의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이라는 책의 내용이 생각났다.

스티브 잡스는 대학 중퇴의 학력으로 사업에서 수많은 실패를 겪었지만 가장 혁신적인 스마트폰인 ‘아이폰’으로 큰 성공을 거둔 기업인이다. 스티브 잡스의 유언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구절은 ‘내가 지금 깨닫는 것은 그토록 얻으려 열망했던 명성과 재산은 막 닥쳐올 죽음 앞에서는 아무 의미가 없다는 사실이다, 죽음 앞에서는 부와 명예 따위는 희미해진다. 이제야 나는 깨닫는다. 인생에서 삶을 유지할 만큼의 적당량의 재물을 쌓은 후엔 부와 무관한 것을 추구해야 한다는 것을.’ 여기서 잡스가 이야기했던 부와 무관한 것은 바로 ‘소중한 사람들과의 추억과 사랑’이다. 잡스는 죽음의 문턱에 이르러서야 ‘타인의 존재의 의미’가 인생에서 가장 절대적 가치를 지닌 것임을 말한 것이다.

또 다른 이야기가 있다. 신영복 교수는 오랜 시간 감옥생활을 해야 했다. 감옥에서 느끼는 가장 지옥같은 상황을 그는 이렇게 서술했다. ‘여름이 되면 타인이야말로 가장 큰 지옥처럼 느껴집니다. 좁디좁은 공간에 숨이 턱턱 막혀오는 더위 속에서 37도가 넘는 고열을 내뿜는 불쾌한 타인의 존재야말로 가장 큰 지옥입니다.’

나는 이 두 이야기에서 사람이 느낄 수 있는 가장 큰 행복과 사람이 느낄 수 있는 가장 큰 불행도 바로 ‘사람’에서 비롯됨을 깨닫는다. 점호시간에 이 두 이야기를 해주면서 학생들에게 바로 옆에 서 있는 ‘급우’가 너희에게 가장 큰 천국일 수도, 가장 큰 지옥일 수도 있다며, 천국이 될지 지옥이 될지는 전적으로 너희에게 달린 문제라고 했다. 우리에게 언제나 ‘타인의 의미’는 지옥이기도, 천국이기도 하다. 어쩌면 교육의 가장 중요한 목적은 사회를 불행하게 하는 타인들보다 사회를 행복하게 하는 타인들을 더 많이 길러내는 것이 아닐까.

 

이예준 (지리산고등학교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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