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00년 전 신라 촌주의 ‘반성문’ 발견
1500년 전 신라 촌주의 ‘반성문’ 발견
  • 김귀현 기자
  • 승인 2017.01.04 15:4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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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안 성산산성서 6세기 사면목간 나와
▲ 함안 성산산성에서 출토된 뒤 보존처리과정에서 확인된 사면목간의 각 면에 새겨진 글자. 지방의 촌주가 성에 있는 ‘대사’(大舍) 관등의 관리에게 법 집행의 잘못을 두려워하며 아뢴 문서다. ‘3월에 진내멸 촌주가 두려워하며 삼가 아룁니다(1면). 이타리 급벌척이 법에 따라 30대라고 고해 지금 30일을 먹고 가버렸다 아뢰었습니다(2면). 앞선 때에는 60일을 대법으로 했었는데 제가 어리석었음을 아룁니다(3면). 성에 계신 미즉이지 대사와 하지 앞에 나아가 아룁니다(4면).’는 내용. /자료제공=문화재청


신라시대 지방 촌주가 중앙 관리에게 올린 ‘반성문’ 성격의 나무쪽 문서(목간)이 발견되면서 학계의 비상한 관심을 받고 있다.

경주에서 파견된 중앙관리에게 법을 잘못 집행했다는 내용으로 이는 신라 중앙 정부가 율령을 통해 엄격하게 지방을 통제·지배하고 있었음을 알려주는 사료로 평가된다. 신라는 법흥왕이 520년 율령(형법 등 당대 법률)을 반포, 고구려와 백제에 비해 그 시기가 늦었지만 지방관이 두려움을 가질 정도로 엄한 사법체계를 갖췄음이 증명된 것이다.

문화재청 국립가야문화재연구소는 2014년부터 2년간 신라시대의 성산산성터에서 진행한 발굴조사에서 나온 목간 23점을 보존처리하는 과정 중 6세기께 신라 지방관의 보고 내용이 4면에 새겨진 목간(나무쪽 문서)을 확인했다고 지난 3일 발표했다. 연구소는 4일 국립고궁박물관에서 6세기 중반 목간을 공개했다.

이 목간은 길이 34.4㎝, 두께 1.0~1.8㎝로 소나무를 깎아 만들었고 4면에 글자 56자를 새겼다. 성산산성에서 사면 목간이 발견된 것으로는 세 번째다.

목간은 당시 ‘진내멸(眞乃滅)’이란 곳의 촌주가 중앙에서 파견된 것으로 보이는 상관에게 올린 보고서 형식을 보인다. 시기를 명기하고 ‘白(백·상대에게 아뢴다는 의미)’자로 문장을 맺었다.

‘급벌척(及伐尺) 직위를 가진 이타리(伊他罹)라는 사람이 30일만 일하고 갔지만 법을 보니 60일간 일을 해야하는 것을 알게 돼 두려워하며 어리석음을 아뢴다’는 내용이다.

연구소는 “목간에서 ‘법(法) 30대(代)’, ‘60일대(日代)’라는 표현이 기간을 명시한 법률 용어로, 기강이 선 지배체제가 확립됐음을 말해준다”고 강조했다.

이 목간에서는 신라 경주에 거주하는 왕경인을 대상으로 한 관직 체계인 경위(京位)의 관등 이름이 최초로 확인됐다. 사면 목간에서는 경위(京位) 중 12등급인 ‘대사(大舍)’ 관등명이 발견돼 성산산성이 중앙정부의 직접 통제 아래에 있었음을 알 수 있게 됐다. 그동안 성산산성에서 출토된 목간에서는 신라 지방 거주민을 대상으로 한 관등체계인 외위(外位) 관등명만 나왔다. 또한 ‘삼국사기’ 등에 기록되지 않은 ‘급벌척(及伐尺)’이라는 외위 관등명이 새로 판독된 것도 눈길을 끈다. 이를 두고 신라의 관등명이 지속해서 바뀌었을 가능성이 있다고 연구소는 밝혔다.

4일 설명회에서는 신라 공문서 형식이 후대 일본에 전해졌을 가능성이 있다는 주장도 나왔다.

이성시 일본 와세다대학교 교수는 “일본에서는 7세기 문서 목간이 많이 발견됐다”며 “성산산성의 사면 목간이 완벽한 문서 형태를 띠고 있다는 점에서 신라의 목간 문화가 일본에 전해졌을 가능성이 있다”고 주장했다.

일본에서는 후지와라쿄(등원경) 유적 등에서 7세기 께 쓰여진 것으로 보이는 목간이 출토된 바 있다. 국내에서는 경주 월성 해자(성벽 주변에 방어 목적으로 만든 인공 고랑)에서 일본 출토 목간과 비슷한 시기에 쓰여진 목간이 다수 출토됐다. 이번에 공개된 함안 성산산성 출토 목간보다 후에 쓰여진 목간이다.

한편 함안군에서는 지난 1991년부터 2015년까지 총 17차례에 걸쳐 국립가야문화재연구소에 의뢰, 함안성산산성목관발굴사업을 추진했다. 동문지 내 부엽층에서 국내 발굴목간의 50%에 해당하는 308점의 목간이 확인됐다.

차정섭 함안군수는 “우리나라 고대 목관의 보고인 성산산성에서 신라의 율령체계를 알 수 있는 중요목관이 확인된 것은 역사적인 사료로 매우 의미가 크다”며 “이번에 밝혀진 사실을 현재 수립중인 성산산성 종합정비계획에 반영해 문화적 가치규명과 활용성 제고에 박차를 가할 계획이다”고 밝혔다.

김귀현기자 k2@gnnews.co.kr




함안 성산산성 발굴현장 모습. /자료제공=함안군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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