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18 (309)
고종오빠도 모든 것을 다 알고 있건만 모른척하고 있었던 것이 분명한 상황. 앗겼을지도 모르는 돈에 대한 미련은 입에 올리는 순간 어머니의 뜻을 욕되게 만들 것 같기도 했다.
“자네 보기에는 우쨌는지 모르지만 두 분이 평생을 같이해 오신 반려인 점을 먼저 생각하지 않으모 이해가 안 되지. 내가 보기엔 외숙부님이나 외숙모님이나 육친 이상의 부부애를 쌓아 오셨던 거고 또 그걸 서로를 위하는 일로 실천 하셨던 기라. 그렇잖나? 허허허-. 그보다 호남이 동생 소식은 들었나?”
결론도 안날 대화의 무위함을 간파했는지 오빠는 다른 데로 화제를 돌렸다.
“무슨……?”
“호남이 동생이 불원 도서방하고 법원에 갈 모양이더라. 동네 사람들 눈치도 보이고 해서 우선 읍내다 따로 방을 얻었다면서.”
양지는 아프도록 꽉 입술을 깨물었다. 그 뻔뻔스럽도록 당당하던 것이. 양지는 코끝이 시큰했다. 잘잘못을 가리기 이전에 형제는 형제였다.
양지는 며칠 전 살든 마을에서 호남이 겪은 일을 오빠에게 말하지 않았다. 보고를 드릴 필요도 없었고 입으로 뇌는 순간 자매가 벌거벗고 매대 위에 같이 서는 것 같은 수치스러움이 앞섰다.
펄펄 거리던 날개를 꺾인 채 동네 인심으로부터 배반당하고 돌아섰을 호남의 심정은 어땠을까. 한 집에서 평생을 같이 살리라하던 다정한 부부가 같이 장만했던 살림을 분류하면서 어떤 생각을 하며 헤어졌을까.
갈기갈기 찢어져서 분산되는 가족단위의 해체가 근원 모를 위기감으로 다가올 뿐이다.
“오빠 그 애만은 정상을 지키게 하고 싶어요. 도와주세요.”
“나도 몇 번 도 서방을 만나 이야기도 해봤지. 그렇지만 호남이 동생이 더 뻑 세게 나오는 성격이라서 의논이고 자시고 더 할 것도 아니고, 언제 또 우리 정리했어요, 할지”
마을에서 돌아오는 늦은 밤길에서만 해도 호남은 전혀 그런 소리를 하지 않았다. 억울하고 분노에 찬 음성으로 끝까지 마을 사람들과 맞대응해서 자기의 위치를 굳건히 지켜내겠다고 큰 소리쳤었다.
“당장 호남이를 만나 볼게요. 어디다 방을 얻었대요?”
“일간 또 한 번 오겠다고 했으니까. 참 아버지한테 간다고 했으니까 쉽게 만날 수는 있겠다.”
“그 동안에 법원에라도 다녀오면 어떡해요?”
“글쎄…. 경거망동은 해서 안 된다고 일렀다만. 모르긴 해도 각오는 하고 있어야 될 끼라. 도 서방 그 사람 성질도 겉보기하고는 다르게 질긴 구석이 있어, 남의 말 듣고 호락호락할 것 같지도 않고”
오빠는 모처럼 난감한 안색을 지으며 입맛을 다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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