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향
양강석 (청학사랑방지킴이)
망향
양강석 (청학사랑방지킴이)
  • 경남일보
  • 승인 2017.01.08 1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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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강석
한해를 보내고 새해를 맞이할 때면 고향이 그리워진다. 더욱 사무치는 이유는 나의 고향이 하동호에 수몰돼 버렸기 때문이다.

수몰민의 시인 김천택은 ‘수몰민’이라는 시에서 잃어버린 고향에 대한 아픈 마음을 이렇게 표현하고 있다

중략 /추억의 고향으로/어머니의 품 같은 사무치는/그리움만 남았다/수면 위로 간간이 비쳐지는/달빛과 햇빛으로/

상이 보이기도 하는/그 추억들을 어디서 찾아 보리/사랑하는 나의 고향이여!

이 시인의 말처럼 하동호에 서면 낮에는 햇빛 속에서 밤이면 수면 위에 비치는 달 별빛 속으로 마치 신기루처럼 옛 고향이 보이는 것 같기도 하다.

눈을 감고 고향의 옛 모습을 그려본다. 정월 대보름에 달집을 짓던 곳, 연을 날리며 팽이를 치던 곳, 물레방아 밑에서 메기와 피라미를 잡던 곳, 해질녘 건너편 마을에서 피어나던 저녁연기, 아버지가 무거운 나뭇짐을 지고 밀고 들어가셨던 그 사립문, 어머니가 형제들의 이름을 부르시던 소리가 꿈결인 듯 떠오른다. 그 중에서도 가장 기억에 남는 풍경이 하나 있다.

그곳에 ‘진번지’(眞番地)라는 작은 섬 모양의 모래밭이 있었다. 그 한 가운데는 기품 있는 낙락장송이 몇 그루 자라고 있었으며 칠성봉에서 흘러내리는 옥수가 역사의 향기가 묻은 신라 마지막 왕 경순왕 사당을 끼고 흐른 뒤 진번지를 휘감고 돌았다.

진번지는 ‘참으로 좋은 땅’이라는 뜻이다. 진주 부호, 정상진 옹이 전국을 돌아다니다 이곳 섬 모양 모래밭의 주위 경관을 보고 아름다움에 탄복해 진번지로 명명했다고 한다.

진번지에선 마을 사람들이 농사정보를 교환하고 자녀들의 혼담을 나눴고, 명절에는 농악놀이, 씨름, 노래자랑을 했다.

지금으로 치면 우리들의 예술의 전당이자 마을의 대소사를 격의 없이 의논하는 광장 같은 곳이었다.

그런데 이런 추억의 광장이 아련한 기억에만 남고 송두리째 하동호에 수몰돼 버렸으니 이 마음을 어떤 이가 헤아릴 수 있을까. 나의 고향 ‘참으로 좋은 땅’ 진번지를 다시 되돌릴 길이 없다는 것이 가슴 아프고 차라리 비극이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내 기억 속에 남아 있는 편린을 끌어내어 망향의 정을 달래본다. 새해를 맞는 아침에.
양강석 (청학사랑방지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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