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18 (310)
해결된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 수학공식처럼 해법을 찾아내고 중장비로 산 하나를 파 없애는 것도 아니었다. 인생살이란 왜 이렇게 보이지 않는 것들로 더 많이 얽혀 있는지. 양지는 잔뜩 숙제를 떠맡고 앉은 듯 가슴이 답답했다. 자신이 나서서 해결될 일은 아무 것도 없었다.
둘은 가만히 앉아 있었다. 꺼낼 말도 없었다. 양지는 자신이 은연중 고종오빠를 의지하고 있음을 확인할 뿐.
“장사장님 댁에서 전화 왔는데 받아보세요.”
계산대의 아가씨가 손짓하자 전화를 받고 온 오빠가 양지에게 손을 내밀었다.
“집에 큰 손님이 왔다네. 같이 안 갈래?”
“아뇨, 전 여기 조금 더 있다 갈께요”
“우리 안집 옆 골목에 방이 하나 있던데 우선 서울 갈 동안까지 만이라도 거기 와서 있는 게 어때?”
내일 갈 거라고, 오빠에게 큰소리쳤던 내일이 벌써 며칠이나 지났다. 터를 고르기 위해 굴삭기가 갈 거라고 명자네서 연락도 왔다. 가야한다면서도 떠나지 못하는 발걸음을 환히 읽고 있던 오빠가 배려를 한다.
“생각해 보고 말씀 드릴게요.”
“나중 들어갈 때 같이 저녁 먹고 답도 해주라.”
꼭 그러겠다는 확답도 아니면서 양지는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오빠네 옆집에다 잠시라도 기거를 정하는 것도 덕이 되면 됐지 나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양지는 아직 누군가를 의식하며 사는 일에 서툴다. 혼자 생각하고 혼자 결정하고 죽이 되던 밥이 되든 혼자 해결해온 습관이 어물쩍 울타리를 허물지 않는다.
혼자 남은 양지는 차게 식은 커피를 조금 입술에다 댔다. 혀끝으로 입술에 묻은 맛을 걷어 들였다. 피붙이란 참 따뜻한 것이다. 오빠가 앉았던 자리를 건너보니 더욱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무엇이든 따져서 꼭 밝혀야 되겠나? 오빠로부터 여러 번 들었던 소리였다. 오빠가 거느리고 있는 사유의 세계는 아주 부드럽고 넓었다. 팍팍하게 바닥이 드러나는 것보다 느리고 답답하기는 해도 얼마나 넉넉하고 편안한가.
‘아버지는 자선 사업가하고는 달라요. 그리고 기분하고 현실하고는 엄연히 차이가 나죠. 그 아이는 장차 누가 기르죠? 이건 어디까지나 현실이잖아요. 아무리 내 몰라라 하지만 언니나 저나 남이 아닌데, 아버지가 경제력이 있어요, 젊기를 하세요. 이건 어린애의 장래가 딸린 문제인데 단순한 동정이나 호기심으로 둘 일이 아니잖아요.’
저작권자 © 경남일보 - 우리나라 최초의 지역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