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18 (312)
[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18 (312)
  • 경남일보
  • 승인 2016.11.29 18: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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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18 (312)

회관에는 마을의 아낙네들이 죄 모여든 듯 늙고 젊은 여자들이 자리를 꽉 메우고 있었다. 하나같이 굳은 표정들인 게 절대 호남에게 호의적인 분위기는 아닌 것을 알 수 있었다.

늙은이가 하나 일어나서 목에 핏대를 세우고 뭐라고 자기 의견을 말하면 젊은이가 다시 일어나서 반대 의견을 말하는 것이 늙은이들과 젊은이들의 의견이 엇갈리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좌중에는 연신 반발과 삿대질이 오고 갔다. 듣고 있던 호남이도 참을 수 없다는 듯 벌떡 일어나서 자기변명을 했지만 양지도 전에 본적이 있는 동구엄마에게 등을 떠밀려 뒷자리로 가서 앉는 것이 보였다.

양지는 낮은 창턱에다 귀를 대고 안의 소리에 청각을 곤두세웠지만 여간 큰 소리가 아니면 감으로 짐작 할 수밖에 없었다. 무슨 말이 있었는지 아까의 그 동구엄마가 호남에게로 가서 귓속말을 하는 것이 보였다. 싫은 표정을 보이며 몸을 흔들던 호남이 좌중을 향해 곱잖은 시선을 휘두른 뒤 동구엄마에게 등을 밀려 회관 밖으로 나갔다. 양지는 발소리를 죽이고 회관의 정문 쪽으로 나왔다. 동구엄마가 호남을 달래고 있었다.

“쬐맨만 피해 있어라. 그래야 우리도 우리 생각을 자유스럽게 말할 수 있제. 내 낭중 갈게, 집에 가 있어.”

동구엄마가 들어간 회관 안을 잠시 흘겨보고 서있던 호남은 단념한 듯 발길을 돌렸다. 뒤따라가서 말을 걸어 상황을 물어보고 답할 분위기도 아니라서 양지는 그저 따라서 걸었다.

호남은 집으로 가지 않았다. 차라리 그믐밤이었으면 싶은 애매한 어둠이 휘부윰하게 뒤덮고 있는 들길로 나섰다. 호남은 좀 전까지의 일은 잊은 듯이 천연스러운 걸음으로 밭둑길을 가다가 이 집은 얼마나 농사일이 진행되고 있는 지 궁금했는지 길옆에 있는 비닐하우스 몇 군데를 삐꿈히 들여다보기도 했다.

호남은 밭에 두고 온 물건이라도 가지러 가는 양 부지런히 한 방향으로 나아갔다. 자신의 하우스를 둘러보러 가는 것이 분명했다. 양지는 거기서 뒤따라가기를 단념하고 발길을 멈추었다. 사람들이 호남을 어떻게 말하고 있는지 회관의 분위기가 더 궁금했다.

사안의 당사자가 없어진 회관에는 아주 자유스럽게 의사개진이 되고 있었다. 아까의 자리로 돌아온 양지는 안의 소리를 좀 더 정확하게 듣기 위해 창문을 조금 밀어보았다. 그러나 새시로 된 창문은 안으로 잠겨있어 요지부동이었다. 그나마 대행인 것은 격렬해진 감정들이 쏟아내는 소리라 아까보다 훨씬 크게 잘 들렸다.

누군가 손을 저어 끓고 있는 좌중의 소리를 가라앉히는데 비탈밭에서 마늘을 심던 그 노파 옆에 앉았던, 은발의 낭자를 탱자열매처럼 자그맣게 뒤통수에다 매단 까만 얼굴의 노파가 일어섰다. 대추나무 방망이처럼 야무진 얼굴에 쇳소리가 강한 억양으로 노파는 입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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