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칼럼] 우리 사회의 정상성이 회복되는 새해가 되기를
강문순(전 진주여성민우회 부설 성폭력상담소장)
[여성칼럼] 우리 사회의 정상성이 회복되는 새해가 되기를
강문순(전 진주여성민우회 부설 성폭력상담소장)
  • 경남일보
  • 승인 2017.01.11 23: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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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최순실 게이트와 함께 시작된 촛불집회가 새해에도 이어지고 있다. 대통령의 변호인들은 ‘촛불민심은 국민의 민심이 아니고 국민에 대한 선전포고’라는 말로 폄훼하려고 하지만 국민 대부분은 그토록 평화적이고 단호한 촛불집회에 스스로도 놀라워하며 새로운 기회를 만들어가고 있다. 최순실로 대표되는 국정농단 집단이 저지른 일들이 너무나 엄청나고 비열해서 이에 대응하는 촛불집회의 태도가 더욱 성숙해 보인다. 이러한 촛불집회의 명시적인 요구는 대통령의 하야와 탄핵, 국정농단의 범죄를 저지른 사람들에 대한 처벌이라는 법적·사회적 해결이지만, 그런 요구의 밑바닥에는 비정상과 비상식이 판을 치는 우리사회의 변화에 대한 열망이 있다고 본다. 어떤 이는 이러한 촛불집회의 기본적 요구를 ‘최소한의 정상성의 회복’이라는 말로 설명한다. 그동안 우리 사회를 끊임없이 흔들었던 비정상적인 일들, 비상식적인 일들을 생각해보면 이 표현에 절로 고개가 끄덕여진다.

얼마 전 성폭력 가해자들과 교정프로그램을 할 기회가 있었다. 대부분의 가해자가 그러하듯이 이번 참여자들 역시 자신은 억울하다고 항변하고, 범죄를 저지르지 않았는데 경찰이 피해자의 말만 듣고 자신을 범죄자로 몰아갔다고 주장하면서 경찰들에 대한 깊은 불신과 원망을 드러냈다. 그런데 문제는 그들을 교육시켜야 할 책임이 있는 나 자신조차도 그들의 공권력에 대한 의심과 불신에 적극적으로 ‘아니’라고 말할 수 없었다는 데에 있었다. 물론 그들의 주장은 거의 모든 성범죄자들이 되풀이하는 항변이었지만, 국가의 최고 권력자인 대통령부터 대통령 비서실장이니 수석비서관이니 하는 국가 최고위 공직자들이 천연덕스럽게 거짓말을 하는 비정상의 나라에서, 그들에게 ‘공직자(경찰)들이 그렇게 할 리가 있느냐’라는 말을 강하게 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고위 공직자들 사이에 만연한 비정상과 비상식을 눈으로 목도하고 있는 현실에서 그들의 항변을 깡그리 부정할 수가 있겠는가 하는 생각이 한동안 머리에서 떠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물론 과거에도 우리는 부정부패에 연루됐거나 직권을 남용하는 고위공직자들을 보아왔다. 그러나 과거의 사건들과 현재의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는 여러 가지 면에서 분명한 차이가 있다. 그 커다란 차이 중의 하나는 이들에게 양심이 있는가라는 질문이 나올 정도로 뻔뻔하다는 것이다. 과거의 비리 공직자들은 자신들의 잘못이 발각됐을 때 적어도 부끄러워하거나 국민들을 향해 ‘죄송하다’는 말을 했었다. 그러나 최근 들어 비리에 연루된 고위공직자들이 보여주는 행태는 부끄러움조차 알지 못하는 뻔뻔함 그 자체를 보여준다. 타인에 대한 연민도, 자신에 대한 부끄러움도 느끼지 못하는 그들을 보며 비정상과 비상식이 우리 사회에 얼마나 깊이 뿌리내리고 있는지 다시 한 번 절감하게 된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라는 온 나라가 뒤집어지는 커다란 해일을 겪으면서, 그리고 계속 이어지고 있는 범죄사실의 폭로 와중에서 이를 다 소화하기 버거울 지경이지만, 이 일련의 과정과 촛불집회를 통해서 우리 사회가 얼마나 비정상적이고 비상식적인지를 온몸으로 느끼게 된 것이 차라리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이번 사건이 비정상과 비상식이 최소한으로라도 바로 잡아지는 ‘정상성의 회복’이 시작되는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을 가져볼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2017년에는 우리 모두가 정상적인 것이 통용되는 나라에서 사는 행운을 갖게 되기를 바란다.
 
강문순(전 진주여성민우회 부설 성폭력상담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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