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안합니다
박현숙(학치료학박사·진주심리상담센터 대표)
미안합니다
박현숙(학치료학박사·진주심리상담센터 대표)
  • 경남일보
  • 승인 2017.01.11 1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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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현숙

자기 삶의 무게도 감당하지 못해 늘 휘청거리며 사는 주제에 어느 분야의 전문가로 알려지는 일은 무척 부담스럽고 곤혹스럽기 짝이 없는 노릇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원고 청탁이나 강의 의뢰를 받으면 나는 주저 없이 글을 쓰거나 대중 앞에서 강연을 한다. 그것뿐인가. 내면의 고통을 치료받기 위해 나를 찾는 그들을 만나는 일도 마다하지 않는다. 마치 세상이 나를 위해 멍석이라도 깔아 놓은 양 말이다. 아직도 그저 남이 쓴 책이나 읽고 있는 한심한 영혼일 뿐 저술이나 강연, 치료에 있어서 어느 한 곳도 제대로 못하고 있질 않은가. 이쯤에서 내가 한 말과 행동에 책임을 다하지 못하고 있음에 대해 자책해본다.

며칠 전, 인근에 있는 학교에 강의를 하기 위해 가는 길이었다. 그날따라 밤하늘에 달이 유난히 아름다웠다. 잠시 차를 세웠다. 그리고는 달을 보며 자신을 향해 물었다. ‘너 지금 제대로 잘하고 있는 거야?’ 나는 그 물음에 미처 답을 하지도 못한 채 학부모들이 기다리고 있는 강당에 도착했다. 그리고 시작된 강의, 나는 “ 미안합니다”라는 말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지각을 한 것도 아닌데 느닷없이 미안하다는 말을 하는 나를 보고 그들은 잠시 의아했을지도 모른다. 그들 앞에 섰을 때 나는 진정으로 부끄러웠다. 그래서 미안했다. 잠시 바라본 달과 나눈 대화, 아니 달이 나에게 일러 준 말은 “제대로 해”였다.

자신의 존재를 있는 그대로 정확히 아는 것이 겸손이라고 한다. 자신의 실체에 대해 제대로 인지하는 것, 다시 말해 우리 자신의 좋고 나쁜 점을 균형 있게 인식하는 것은 중요하다. 우리는 모든 능력을 다 갖고 있지도 않으며 완전하지도 않다는 사실을 알아야 하지 않을까. 하지만 우리는 마치 세상을 다 아는 양 쉽게 판단하며 자신의 잣대로 상대방을 대하는 실수를 범하곤 한다. 그날 밤 내가 그들 앞에 섰을 때 미안하고 부끄러웠던 이유가 여기에 있다. ‘내가 지금보다 더 능력을 갖추었더라면, 아니 내 존재 자체만으로도 이들에게 신선한 자극을 줄 수 있다면….’ 그랬다. 최소한 누군가를 향해 발언하려면 용기와 실력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지금 보여지는 내 모습이 어떠한가를 알 일이다.

누군가의 앞에 섰을 때 부끄럽지 않은 삶, 그리고 더 이상 미안하지 않을 만큼 최선을 다하는 삶을 살고 싶었다. 아니 그렇게 살고 싶다. 가장 자연스럽게, 가장 나답게, 그렇게 제대로. 이쯤에서 말하고 싶다. 그날 밤 나는 최소한 그들 앞에서만은 진실했노라고.

 

박현숙(학치료학박사·진주심리상담센터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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