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18 (314)
[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18 (314)
  • 경남일보
  • 승인 2016.11.29 18: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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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18 (314)

“철 모르는 언내도 학비대고 핵교 보낼 때는 좋은 거 배울라꼬 보내는 거 아이것나. 좋은 기라 카능기 뭐 이것노. 사람 사는 보법이제. 그 법은 꼭 돈 내고 핵교만 댕기면서 배우는 것도 아이더라 이 말이라. 집에서 새는 바가치 밖에 나간다꼬 안 샐까. 아아들이 핵교 가모 너거 동네 우떤 우떤 일이 있었다카데 그런 말 들어모 그 아들 심정이 우떻것노. 어른은 변명이라도 하지만 아아들이 뭘 아노, 뭐라꼬 말할 끼고. 탁 깨놓고 말해서 늙은 우리는 개안타. 귀도 안 뚫린 에린 것들 가진 젊은 사람들이 큰일이제. 내 말이 무신 뜻인지 얼른 몬 알아듣는 사람이 있을 듯해서 그라는 디, 바로 한 마디만 더하자. 그 에편네한테는 살기가 있어. 네 자식의 얼굴을 쓰다듬으면 네 자식이 죽고 네 논밭에 곡식을 그년이 쳐다보기만 해도 병이 들고 죽어간다 카모 우짤래. 그래도 동정하고 히히 하하하면서 한 동네서 같이 살것나 말이다. 옛날부터 그 집안이 잘될라카모 삐가리 한 마리도 울안에서 안 죽는다 카는긴디 항차 씨에미를 해친 살인이 난기다. 참말로 이 일이 작은 일이가? 그 일이 생각날 때마다 편하기 복 받을 끼라 생각것나 그 말이다“

수굿하던 젊은 측의 분위기는 순식간에 어수선해 졌다. 마늘밭 노친네의 쐐기 박는 한 마디 비유는 너무 간단하게 좌중을 설득하고 압도했다. 양지는 빠르게 눈길을 돌려 동구엄마를 찾았다.

젊은이들의 앞에 앉아있는 동구엄마의 표정도 굳어있었다. 그래도 가만히 있지는 못하겠다는 듯 동구엄마가 일어나서 안타까운 눈길을 젊은이들 쪽으로 더 많이 보내며 한 가지 제안을 했다. 위기감을 느낀 얼굴로 젊은이들 쪽 여기저기를 돌며 무슨 말인가를 하고 있었지만 양지에게까지 들리는 소리는 아니었다. 반응을 보이는 사람도 있고 아까와는 달리 외면을 하는 사람도 있었다. 변하고 있는 젊은이들 쪽의 분위기를 돌아보다 고개를 몇 번 가로젓던 동구엄마가 결심한 듯 큰 소리로 말했다.

”그라모 우리 손을 들어 찬성과 반대로 결과를 지업시더.“

몇 사람 찬성의 손뼉을 쳤다. 도대체 무슨 결정을 내리려는 것일까. 이리 저리 둘러보며 서로의 의견을 타진한 늙은이들이 거수를 했다. 만세를 외치듯 단호한 동작으로 두 손을 올리는 늙은이도 있었다. 늙은이들 모두는 한 마음 한 뜻임을 알리는 일사불란한 동작이었다. 편갈려서 망설이고 있던 젊은 여자들 속에서도 하나 둘 올라가던 손이 나중에는 늙은이들이 보내는 비난의 눈길과 함께 동구엄마를 비롯한 두어 사람만을 남기고 거의 모두가 손을 들었다.

반대 숫자를 헤아리기 위해 고개를 빼고 살피던 동구엄마의 얼굴이 절망적으로 굳어들었다. 후세들이 피해를 받는다는 충격적인 비유는 굳건하게 뿌리내리고 있는 마을의 기본 정서에 맞서 호남이 쌓아놓은 행적을 옹호하는 아무런 변명도 정황도 먹혀들지를 않는 것이다.

호남을 축출하기 위해 집으로 몰려와서 기다리던 마을 사람들이 돌아갈 때까지 호남은 돌아오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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