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18 (317)
[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18 (317)
  • 경남일보
  • 승인 2016.11.29 18: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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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18 (317)

우리는 넝쿨 식물이면서도 땅을 기고 싶지 않았던 저 담쟁이 넝쿨이었다. 양지는 눈물로 어룽거리는 눈길을 들어 끝 간 데 모르게 뻗어 올라 간 담쟁이덩굴을 쳐다보았다. 담장 끝까지 올라갔던 넝쿨은 더 오를 곳 있는 처마를 발견하고 숨 가쁜 줄도 모르고 처마를 기어 올라갔다. 그러나 하늘에 이르기는 처마도 한계가 있음을 발견한 즈음 건너편에 있는 까마득한 미루나무를 발견하고는 그쪽으로 손을 뻗었다. 아득히 높은 곳에 대한 동경과 의지로 끝없이 고개를 쳐드는 욕구의 손짓들. 양지는 순간 진저리를 쳤다. 누군가의 서투른 농기구질로 저 담쟁이의 뿌리가 상하는 날 담쟁이는 어떻게 될까. 천벌을 받는 것이다. 능력 이외의 것을 탐심한 허황한 생명들에게 내려지는 가차 없는 징치. 너무 비약된 비유일수도 있지만 살인을 한 호남을 탄원으로 풀어낸 마을 사람들이 이번에는 자신들의 장래에 끼칠 두려움 때문에 호남을 배척하는 결단에 손을 든 것도 같은 맥락 아닐까.

순간 무엇인가 와장창, 파괴되는 소리가 났다. 호남이네 집 쪽이었다.

“나는 잘 살고 싶었다아!”

스라브 지붕 위에 호남이가 있었다. 간장냄새가 진동을 했다. 박살난 오지항아리가 피처럼 검붉게 간장을 흘리고 있었다. 순간 또 무엇인가가 퍽지근 떨어져 내렸다. 까만 항아리의 파편을 살 속에 박고 누런 된장이 여기저기로 흩어졌다.

“내가 뭔 잘못을 했어. 저들 모두한테 하느라고 했어. 나는 안 쫓겨 갈 끼다. 내가 와. 내가 와, 내 집에서 쫓기 날 끼고.”

말리는 동구엄마를 달고 미끄러지듯이 난간을 타고 내려온 호남은 잠겨있는 현관의 문을 화분 옆에 장식용으로 나란히 놓여있던 문양석을 집어 들고 깨뜨리기 시작했다.

“인마야, 이라지 마라. 주영이 아부지가 열쇠 갖고 갔응깨 주영이 아부지 부르모 안되나.”

“그 인간이 그럴 줄 몰랐다. 내가 온다 소리 듣고도 문 잠가놓고 간 놈인데 나타날 줄 아나. 지가 내 속을 모르나. 그 인간이 그럴 줄 몰랐다. 내가 와 살았는데. 내 뜻에 동의하고 잘해보자 칼 때는 언제고 인제사 등을 돌려. 배신자, 나쁜 놈!”

올 때하고는 너무 달라진 호남의 태도에 양지는 얼떨떨해졌다.

‘단단히 각오는 하고 있어야 된다. 이왕 끝낼 바에는 의연하게 초라하지 않게 해야 두고두고 마을 사람들에게나마 나쁜 기억으로 남지는 않지’

호남은 그럴 리 없다고 했지만 지레 겁을 먹은 양지는 호남에게 미리 주의를 주었었다.

‘언니야, 니는 사회생활도 그리 했다는 사람이 우찌 그리 간이 작노. 있는 거 다 내삐리고 다시 시작하모 된다. 설마 산 입에 거미줄 치것나. 걱정도 팔자다이. 여기 아님 설마 살데 없을까’

그러면서 둘이 마주 웃고 온 호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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