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18 (318)
[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18 (318)
  • 경남일보
  • 승인 2017.01.17 2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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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18 (318)

“이기 무신 짓이고, 이 동네가 니 혼자 사는 세상이가. 젊은 기 어데서 겁도 없이 이라노!”

귀 밝게 먼저 달려 와서 짓밟은 사람은 역시 마늘밭에서 보았던 노파였다.

“아지매가 그랄 줄 몰랐심니더.”

들고 있던 돌을 다른 손으로 옮겨들며 호남이가 계단을 내려서자 자신을 해치려는 줄 아는지 굳게 질린 노파가 주춤 뒤로 물러섰다. 노파와 같이 온 다른 늙은이들도 저만큼 동정과 분노가 뒤섞인 표정을 감추며 둘러 서있었다.

“그랄 줄 몰랐다이? 아이구야 뭐로 믿고. 가제는 게 편이란다. 어데서 배와묵은 짓이고. 살림살이 야무치게 산다꼬 쪼매 봐줬더마 어른 아도 겁 안내고, 세상에 겁나는 기 있나. 이 세상에는 법이 시퍼렇게 살아 있다. 어른 아아가 있고 선후가 다 있는 긴데, 이런 망할놈으 세상이 어데 있더노. 너거 젊은것들이 아무리 나대봐라 에미 없는 새끼가 있는 가. 와 요새 세상이 이리 어지럽은고 아나. 젊은 것들이 천벌을 짓고 있는 땜시라.”

억하심정을 분출하느라 꺽꺽 목이 잠기기도 했지만 노파는 마을여인들의 수장으로서 이쪽저쪽을 번갈아 치면서 할 말을 다하고 있었다. 불도저처럼 앞을 잘 차고 나가던 호남이 마저 그렇게 망가지는 것을 보자 양지는 의지하고 있던 담장이 허물어진 듯한 무력감에 휩싸여 온 몸이 후들거렸다.



호남이 따로 방을 얻어 나왔다는 의미는, 멀리 뛰기 위한 동작으로 웅크린 개구리처럼 해석하기 나름일 테지만 그 말을 들은 양지의 지금 심정은 아주 신산하고 암담했다. 아아, 우리들의 장래는 과연 어떻게 열려 있는지 미리 알 수는 없을까. 양지는 다시 마시다 만 엽차를 들고 굳은 듯이 차오르는 목젖을 달랜다.

19

바람결이 아직도 매서운 언덕에 서있었다. 어린 날 환경으로 인해 열리지 않던 암담한 앞날을 바라보며 자주 서 있곤 하던 굴참나무 고목이 서있던 자리였다. 억센 서북풍을 막기 위해 저 산을 만들었느니라. 원래는 한양으로 가는 지름길이 산 고개를 가르고 있었는데 세월 따라 턱이 낮아져서 자연히 바람 골이 되었지. 갈라진 산자락으로 칼바람이 휘몰아 쏟아지면 얼음폭포가 어디 따로 있을라고. 금계가 추워서 알 품는 것을 포기할지도 모른다는 설을 인위적으로 막아보자던 꽤 집요하고 방대한 노력의 현장이었다. 자연적인 산의 형상을 이루고 있지만 사실은 조산인거라. 저게 어떻게 사람의 힘으로 이루어진 것인 줄 짐작이나 하겠어. 바위를 굴러다 심을 박고 붉은 황토를 져다 다지고, 인간이 한 일 치고는 대단한 역사 아니냐. 세월이 가고 그 비밀을 아는 사람들이 모두 사라지면 저 산은 비로소 자연스럽게 산이라는 제 모습을 갖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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