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19 (319)
[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19 (319)
  • 경남일보
  • 승인 2017.01.17 2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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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19 (319)

양지는 치마폭처럼 풍성하게 퍼져나간 동네 주위의 산들을 깊은 눈빛으로 둘러보았다. 언제 이렇게 산과 들의 모양을 찬찬히 살펴 본적이 있었던가. 그 모양이 그 모양이라 예사로 보아왔던 산이며 들이었다. 그러나 자세히 보면 그 모양이 그 모양 같아도 뻗어있는 방향이 다르고 솟아오른 고도며 흙의 토질도 다르다. 저 산들도 혹시 아주 옛날에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산은 아닐까. 문득 그런 의문이 드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높은 산꼭대기에는 상징적으로 단단한 바위가 있어 산의 기상을 산답게 받쳐주고 있다. 커다란 암석들이 융기해 있지 않으면 제아무리 높은 산이라 한들 커다란 흙무더기에 불과하며 힘이 솟구치는 기상 같은 것은 느낄 수 없다. 들추어보면 비록 낮은 산일지라도 각각 제 이름이 있고 또 그럴싸한 전설도 있다. 특히 눈길을 보내고 있는 저 산은 비록 큰 산은 아니지만 자주 일컬어지는 전설로 인한 밀접한 관계로 양지의 심중 한 곳을 남다르게 차지하고 있다.

곁에서 같은 곳을 바라보고 있던 고종오빠가 역시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던 듯이 말을 꺼냈다.

“전설이 그럴싸하게 현실로 재현될 때도 있는데 정말 감탄할 정도로 사실감 있는 이야기들이 많지. 저 산에 얽혀서 전해지는 이야기는 내가 아는 기자가 꽁트 식으로 정리한 걸 본 적이 있는데 아주 그럴싸하데.”

양지는 자신이 알고 있는 내용과 별반 다르지 않는 오빠의 이야기를 모르는 듯이 들었다.



만물이 소생하는 삶의 훈기로 봄기운을 무르익히는 봄날이었다.

하인의 안내를 받아 박처사가 들어왔다. 박빙처럼 해맑게 퍼져있는 사랑마루의 햇살 위로 뜬 듯 가뿐한 걸음이었다. 그는 낙남이전부터 세교가 있는 최진사의 친구였다.

“앉게나. 이 사람.”

뒹굴던 안석에서 느리게 몸을 일으키며 최진사가 자리를 권하자 당장 끌어 일으키기라도 할양 급한 호흡으로 박처사가 말을 받았다.

“이 사람아, 참 딱도 하이. 내말 허투루 듣지 말라 그리 일렀는데도 어찌 이리 한가하게 나롱이나 부리고 있나. 어서 일어나서 밖으로 나가 내 말 좀 들어.”

“헛허, 또 그 성화 나오네. 때는 좋아 호시절, 꽃 피고 잎 피는 봄 오는데 무에 그리 급한가. 여기 와서 가만히 눈을 감고 있어 보게. 봄바람에 간지럼 타는 화초들의 웃음소리가 들리네. 바람이 몰고 오는 세월의 긴 끄나풀 소리도 들리고 말일세. 자네 그 걱정 많은 재기로는 못들을 소리들이긴 하지.”

“잔말 말고 일어나, 어서 일어서라니까! 허, 어쩐지 그래서 이쪽으로 자꾸 오고 싶더라니.”

최진사의 놀림대로 재기가 넘쳐서 좀 경박스러워 보이는 눈을 굴리며 박처사는 딱한 듯이 손을 내밀어 비스듬한 최진사의 상체를 끌어 반듯하게 일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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