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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희근 교수의 慶南文壇, 그 뒤안길(409)<169>의로운 시인 윤동주와 경남의 인연(10)
김귀현  |  k2@g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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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7.01.19  21:42: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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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동주가 1945년 2월 16일 후쿠오카 감옥에서 순국하고 3월 6일 용정에서 장례식을 가졌다. 동주의 동생 윤일주(10살 아래)는 1946년 6월 단신으로 월남했다. 19세였다. 북간도에는 조부모와 부모 및 누나 혜원과 남동생 광주가 남았다. 서울에 온 윤일주는 형의 친구들을 만나 유품들을 찾았다. 강처중은 윤동주의 책들과 앉은뱅이 책상과 유품들을 전해 주었다.

다음으로 정병욱을 만났다. 정병욱에게서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육필 원고를 전해 받았고 강처중은 경향신문 기자로 근무하면서 윤동주의 첫시집을 주선하여 1948년 1월 30일에 정음사에서 출간했다. 윤일주는 월남하여 1946년 4월말에 경성대학(서울대 전신) 건축공학과에 입학했다. 정병욱은 같은 해 10월말 경성대학 국문과에 편입했다.

윤일주는 졸업후 5, 6년간 해군에 입대하여 장교로 복무했다. 그 사이 정병욱은 대학을 졸업하고 부산여고 교사와 부산대학교 강사로 출강을 했는데 마침 부산여고에 재학중이던 여동생 정덕희가 오빠의 국어시간에 윤동주 시를 가르치던 오빠 정병욱의 열강을 잊을 수가 없다고 전한다. 이후는 모두 진주교대 송희복 교수의 자료에서 찾은 내용이다. 수업 시간에 오빠 정병욱은 윤동주와의 관계를 설명하고 윤동주의 ‘서시’를 흑판에 외워서 썼다는 것이다.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 걸어야겠다/오늘 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정병욱은 이 시를 읽고 난 뒤 창 밖을 내다보며 손수건으로 눈물을 연신 훔쳐내었다는 것이다. 이 광경을 본 정덕희는 오빠와 윤동주와의 관계를 생각하며 안쓰런 마음으로 시간을 보내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던 어느날 오빠 정병욱이 오늘 점심에 윤동주 동생 윤일주군과 약속이 있는데 덕희도 같이 가자고 하더라는 것이다. 그래서 세 사람은 즐겁게 담소하며 시간을 보내다가 헤어졌는데 정병욱이 본격적으로 누이와 윤일주를 맺어주고자 뜸을 들였다. 양쪽에다 따로 따로 상대가 어떠냐고 타진해 보니 다 같이 싫다는 빛이 없었다는 것 아닌가.

중매가 성립이 되어 1956년에 결혼을 하게 되었다. 같은 해 ‘허니문 베이비’가 태어났고 그 아이 이름은 인석이었다. 윤동주의 조카가 북간도가 아닌 부산땅에 태어난 것이다. 윤일주는 부산대 교수, 동국대 교수, 성균관대 교수로 봉직했고 형의 유업을 받아 시인이 되었다. 윤동주의 여동생 윤혜원은 1948년 12월 남편과 같이 월남했다. 윤혜원은 동주의 중학생 시절의 시 원고를 다 들고 왔다. 윤동주의 시집에 증보판이 나올 때 그 중학생 시절의 시가 대거 들어간 것으로 보인다.

정병욱 교수(서울대)는 윤동주와의 인연을 양켠 동생들로 하여 부부간 인연을 맺게 함으로써 완벽한 혈연의 관계로 상승시킨 셈이다. 정병욱 교수는 남해 설천면에서 태어난 인연으로 윤동주와의 끈을 맺었으니 의로운 시인은 이렇게 경남과의 인연을 단단히 동여매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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