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19 (320)
[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19 (320)
  • 경남일보
  • 승인 2017.01.17 22:2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19 (320)

“소나기 번개가 쳐도 참새걸음을 걷지 말 것이며 우캐덕석이 떠내려가도 군자는 호들갑을 떨면 안 된다고 내 그렇게 가르쳤거늘-”

상대방이 어떤 행동을 보이건 최진사는 여전히 농을 하며 여유를 보인다. 어릴 때부터 너무 잘 아는 상대이기 때문이다. 못 이긴 듯 박처사도 주저앉고 말았다. 하지만 굳은 표정은 여전히 풀지 않는다.

“그나저나 웬 일인가. 그 촐랑 걸음이 뜸하길래 흙밥 된 줄 알았더니.”

“토굴에 든다고 내 그러지 않던가.”

툭 내뱉는 말속에 서운하다는 투정도 섞여있다.

“참, 그랬던가.”

최진사는 느긋하게 대답하며 늘어진 수염을 만지던 손길을 뻗어 협문을 민다. 술상을 차려오라 할 것이다.

“내가 그깟 술배가 고파서 온줄 아나. 내 단도직입적으로 말하겠네. 그만 이치쯤은 자네가 깨닫고 있을 줄 알았더니, 자네 어쩌자고 계속 여기 이렇게 눌러있나. 내 생미 보내 온 막쇠놈한테 일러 보냈거늘. 어서 이 집을 떠나야 된다는 내 당부 안 전하던가?”

“막쇠? 그 놈을 그럼 자네가 돌려보냈던가?”

“어허이, 영리한 놈 내 말 듣고 줄행랑 놓았군. 내 자네가 업혀 보낸 쌀값이나 한답시고 비답을 보냈더니 신실한 과객 편에 중의적삼 부친 격 났군 그래, 쯧쯧……. 여인함원이면 오월비상이라고 막쇠놈한테 시켰건만. 지금이라도 늦잖으니까 당장 이 집을 뜨세. 급한 불을 꺼야 돼. 살(煞)을 막아야 된다니까!”

싱그레 웃으며 듣고 있던 최진사가 순간적으로 정색을 하며 기대고 있던 몸을 발딱 바로 세웠다.

“이 사람 듣자듣자 하니까, 명색이 내 결격 없는 사대부거늘 그깟 계집들 좀 희롱했기로, 반풍수 자네 말마따나 그런 짓한 사내들 모두 서리 맞고 급살 맞다보면 세상 사내들 몇이나 명줄을 보전하겠나.”

“글쎄, 내 이런 말은 차마 입에 올리기 뭣하지만 자네 부인은 여인 아닌가? 가운이 다했어. 모릿대가 내리 앉게 됐다니까!”

최진사의 손길이 자신도 모를 동작으로 이마 위의 관테를 쓸었다. 날아가는 매미 날개처럼 관뿔이 파르르 떨었다. 박처사의 형형한 눈빛이 여느 날과는 사뭇 다른 것을 그는 비로소 알아차렸던 것이다. 저 곡진한 표정이 길래 농담이 아닌 것을 말한다. 할 말을 잃은 최진사가 박처사를 건너다본다. 이런 최진사의 반응에 고무된 박처사가 사명감 넘치는 얼굴로 말을 이었다.

“내 언젠가 말했지. 자네 집터가 금계포란혈(金鷄胞卵穴)과 오공혈(蜈蚣穴)의 상충점이라고. 지네하고 닭이 서로 기를 세우고 상충하는 극점에서 운기가 치솟았는데 이제 서서히 한 쪽이 죽어가고 있다네. 지네 독이 살아나서 닭을 녹이고 있다 이거야. 맞겨루던 힘의 균형이 깨지면 누가 패를 볼지 뻔 한 것 아닌가.”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 경상남도 진주시 남강로 1065 경남일보사
  • 대표전화 : 055-751-1000
  • 팩스 : 055-757-1722
  • 법인명 : (주)경남일보
  • 제호 : 경남일보 - 우리나라 최초의 지역신문
  • 등록번호 : 경남 가 00004
  • 등록일 : 1989-11-17
  • 발행일 : 1989-11-17
  • 발행인 : 고영진
  • 편집인 : 강동현
  • 고충처리인 : 최창민
  • 청소년보호책임자 : 김지원
  • 인터넷신문등록번호 : 경남, 아02576
  • 등록일자 : 2022년 12월13일
  • 발행·편집 : 고영진
  • 경남일보 - 우리나라 최초의 지역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경남일보 - 우리나라 최초의 지역신문. All rights reserved. mail to gnnews@gnnews.co.kr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