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일포럼] 미래는 ‘깊은 학습’의 시대
김정섭(부산대학교 교육학과 교수)
[경일포럼] 미래는 ‘깊은 학습’의 시대
김정섭(부산대학교 교육학과 교수)
  • 경남일보
  • 승인 2017.01.23 15: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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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 과학과 문화를 발전시킬 수 있었던 것은 창의적으로 생각하는 능력을 가졌기 때문이다. 인간의 창의적 사고력은 미지의 아이디어를 찾기 위해 폭 ‘넓게 생각’하는 것과 이미 알려진 문제나 아이디어를 더 발전시키기 위해 깊숙이 파고들면서 생각하는 것으로 나눠진다.

농경사회에서 산업화시대로 전환될 때에는 넓게 생각하는 힘이 중요했다. 과학기술과 교통수단이 발달함에 따라 몰랐던 미지의 세계로 탐험하는 것이 가능했기 때문에 가능한 넓게 생각하는 능력이 중요한 역할을 했다. 넓게 생각하는 힘은 다시 과학기술이 더 빨리 발달하도록 만드는 원동력으로 작용했다. 산업화가 진행될수록 방대한 지식이 누적됐고, 공장이나 회사는 많은 지식을 가진 사람을 채용했고, 이러한 인재를 학교에서 길러내주기를 원했다. 결국 산업화는 근대학교를 도입하고 확산시키는 근원이 됐다.

산업화시대의 대량생산체제에서는 깊게 생각하는 것보다 주어진 과제를 실수 없이 빨리 처리하는 능력이 더 중요하다. 산업화시대의 학교는 지식을 빠르게 많이 습득한 인재를 양성하려고 노력했고, 학생들에게 더 많은 지식을 가르치기 위해 다양한 교과목을 개발했다. 학생들은 점점 더 많은 시간 동안 학교에서 공부해야 했고, 모든 교과목에서 높은 점수를 받아야 했고, 방과후에도 공부해야 했다. 이에 따라 학교는 산업화시대에 필요한 인재를 성공적으로 양성할 수 있었다.

그러나 우리는 ‘넓은 학습’이 주는 부작용에도 주목해야 한다. 넓은 학습의 약점은 학생들이 학교에서 많은 교과목과 지식을 배우지만 어느 것 하나 제대로 할 수 있는 것이 없다는 데 있다. 이러한 학교교육은 학생을 수학 배우기를 포기한 수포자나 영어 배우기를 포기한 영포자로 만들기 쉽다. 그 결과 학생들은 학교로부터 벗어나려고 애쓰며 졸업한 뒤 성인이 돼서도 ‘배움으로부터 도피’하려고 했다. 우리나라 성인들의 역량(PIAAC)이 OECD국가 중에서 하위권에 속하는 이유도 학교가 ‘넓은 학습’을 지나치게 강조한 데서 찾을 수 있다.

반면 21세기의 특징인 지식정보화 사회는 스스로 지식을 창출할 수 있는 지식 생산자 또는 메이커(maker)를 더 필요한 인재로 여긴다. 산업화시대에는 넓게 아는 것만으로도 새로운 지식을 생산할 수 있었으나 지식정보화시대에는 깊게 알아야만 새로운 지식을 창출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제 넓게 학습하는 것보다 깊게 학습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이러한 시대적 요구에 부응하는 새로운 학습법으로 ‘깊은 학습(Lid·learning in depth)’이 각광받고 있다. 부산에 소재하는 내리초등학교는 학생들이 특정한 주제를 깊게 학습할 수 있도록 기회를 제공하는 Lid프로그램을 적용, 교육부의 2016년도 ‘100대 교육과정 우수학교 공모전’에서 초등학교 부문 1위를 차지했다. 이에 부산광역시교육청은 2017년부터 Lid 프로그램을 많은 학교에 보급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하고 있다.

Lid프로그램은 캐나다의 교육학자인 키렌 이건에 의해 개발돼 밴쿠버에 소재하는 학교에서 적용되고 있으며, 부산대학교 교육학과 김회용 교수에 의해 한국에 도입됐다. Lid프로그램은 학생이 관심 가지는 주제에 대해 깊게 생각하고 학습해 전문가 수준의 지식을 쌓을 기회를 주는 새로운 학습법이다. 이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학생들은 자신이 탐구해 학습한 지식을 또래들과 공유하면서 더 발전시킬 기회를 얻어 자발적으로 학습하는 자기주도적 학습자가 된다. 많은 학교에서 Lid를 적용해 학생들을 깊은 생각을 할 수 있는 인재로 양성하기를 기대한다.
 
김정섭(부산대학교 교육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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