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19 (325)
[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19 (325)
  • 경남일보
  • 승인 2017.01.17 2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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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19 (325)

“그래야지, 그래야하고 말고. 우리 이런 거 한 번 할까? 파이팅!”

오빠가 결의를 다지는 뜻으로 내민 손바닥에다 소리 나게 힘껏 양지도 제 손바닥을 쳤다.



남도 특유의 온화한 날씨 덕에 쌓였던 눈도 거의 녹았다. 매운 듯한 바람결 사이에도 싹눈을 간질이는 부드러움이 있어 감각이 예민한 수양버들은 벌써 연미색 몸짓으로 봄맞이 춤을 춘다. 고종오빠는 과수원에 넣을 퇴비를 사러 지리산 목장을 오간다. 모두들 제 나름대로의 생각을 행동하며 삶을 연속시켜가고 있다. 만족하는 부분도 있고 그렇지 못한 부분도 있겠지만 생존이란 만족도 불만족도 수용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인생이란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고통스런 대비학습이다.

더 이상 머물러야 할 명분이 없어 양지는 가방을 챙겼다. 뒤늦게야 아버지의 일에 머리를 디밀었던 자신의 행동에 대한 어쭙잖음도 있었다. 어디서 어떻게 끼어들어 간여를 할지, 그런다고 해서 또 바람직한 결말이 주어질지 어떨지도 미지수인 일에 새삼스레 해결을 염두에 둔 관심을 갖는 것 자체도 무리가 따를 것이란 생각도 든 참인데 아버지의 일은 고종오빠가 자신에게 맡겨보라 하니 한결 가벼운 마음이다.

이제 가면 언제 다시 올 것이라는 기약도 없는 가운데 고향은 그녀의 굳어 붙은 마음속에서 전설처럼 잠들어 갈 것이다. 오라는 데는 없다. 가라는 사람도 없다. 그러나 떠나지 않으면 안 된다.

양지는 어머니의 산소로 발길을 옮겼다. 이제 떠나가면 언제 다시 찾아올지 모르는 곳이다.

음지에 쌓인 눈은 아직 녹지 않고 푹신푹신 발등을 덮었다. 어마지두에 정했던 어머니의 산소는 반음반양의 음택이어서 봉분을 정점으로 한 쪽은 아직 눈이 수북하게 쌓여 있고 다른 한 쪽은 거의 눈이 녹아서 붉은 흙이 그대로 드러나 있었다.

생각하면 참 꿈만 같은 생각이 자꾸 들었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어머니랑 대화를 했고 같이 비행기를 탔으며 물건을 사러 다니기도 했는데 이제 어머니는 차디찬 땅속에 묻혀서 이 세상과는 아무런 소통이 안 된다.

상포계 사람들이 자기들끼리 쉬쉬하며 상을 찡그리고 가족들 누구에게도 어머니의 시신을 보여주지 않은 채 수습하여 입관을 해 버렸기 때문에 양지는 아직 어머니의 죽음을 실감하지 못한다.

그렇지만 어머니는 어디에도 존재해 있지 않았다. 자주 보이던 지인들도 이민을 가고 나자 다시는 눈앞에 나타나지 않는 것처럼 편지도 전화도 통하지 않는 먼 나라로 어머니도 이민을 갔다고, 양지는 자신의 슬픔에다 어깃장을 놓고 버텼다.

발끝에다 신경을 모으고 다리에 힘을 주었으나 미끄러지고 엎어지며 길을 오른다. 채 다져지지 않은 새 길이어서 한결 미끄러움이 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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