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19 (326)
[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19 (326)
  • 경남일보
  • 승인 2017.01.17 2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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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19 (326)

거의 묏벌에 이르러서 어머니의 산소를 올려다보던 양지는 저도 몰래 전신이 굳어 드는 놀라움으로 발걸음을 멈추었다. 아주 빨리 스치는 생각으로 어머니의 마지막을 지켜보지 못한 죄책감으로 그렇게 괴로워하더니 호남이 어느 결에 석상을 마련해서 안치했구나 싶었다.

아버지는 그렇게 석상처럼 어머니의 묫등 앞에 앉아 있었다. 앞에는 소주병이 놓여 있었다. 그러나 금방 술을 마신 것 같지는 않았다. 오래 전에 굳어 버린 것처럼 움직임도 없이 은빛 성성한 머리카락만 바람에 이저저리 쓸리고 있었다.

어머니가 살아 있을 때 했던 말이 생각났다. 남자, 그 어리석고 허풍선이 존재를 긁어 본들 뭐하것노. 나이 들고 덩치만 컷제, 생각는 것 행동하는 것 모도 어린안기라. 어머니는 큭큭 웃다가 이런 소리도 했다. 나만 아는 비밀이제. 너긋들 성이 최간지 뭐인지는 내가 굳이 안 밝히모 너가부지가 우찌 알 끼고. 그란 데도 나는 아무것도 아니고 자기만 똑똑다꼬 나대는 것 보모 참 가소롭고 측은한 때가 한두 번이 아이제.

어머니가 했던 이야기 중에는 또 이런 것도 있었다. 나는 평생 홀아비로 외롭게 살다가는 시아부지의 상여 뒤를 따라가면서도 실상은 망인의 죽음보다는 천지간에 돌에도 나무에도 등 기댈 데 없이 혼자 외롭게 남은 너거 아부지 모습이 너무 애처로바서 더 뜨거운 눈물을 한없이 가슴에서 펑펑 자아 올렸다.

아버지에게다 외짝사랑을 바치며 살았던 어머니야 그랬겠지만 아버지까지 그럴까 보냐고 퇴박을 놓았었는데, 상상도 해본 적 없는 아주 뜻밖의 상황을 잠시 바라보고 있던 양지는 발길을 돌렸다. 아버지를 여기서 만나리라는 생각은 해본 바도 없었고, 또 다가간들 무슨 할 이야기가 있을 것 같지 않았던 것이다. 어머니의 초상치레를 끝 낸 후 정리해야 될 의례적인 일 때문에 데면데면하게 몇 번 대했고 스쳤을 뿐이다.

소리 나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발을 떼는데 벼락 치는 듯 한 고함 소리가 양지의 뒤통수를 후려쳤다.

“내가 귀신이가, 와 가노!”

양지는 놀라 털버덕 엉덩방아를 찧으며 주저앉을 것 같은 몸을 간신히 옆에 있는 소나무를 잡고 버티었다. 돌아보았으나 마치 다른 사람이 대신 소리치기라도 한 것처럼 햇빛을 옆으로 받으며 앉아있는 아버지의 실루엣은 그대로 흔들림 없이 꼿꼿했다. 양지는 내키지 않는 걸음을 옮겨 산소 가까이로 다가갔다. 아버지가 저렇게 당당하게 나오다니. 결코 취해서만이 아닌 오기의 저돌적인 분출은 아버지에게서 멀어지고 싶은 양지의 거부감을 더욱 강한 힘으로 부추겼을 뿐 아버지가 의도했을지도 모르는 위상에는 어떤 보탬도 되지 않았다.

“내 이때꺼정 네한테는 싫은 내색 한 번 안보이고 체변만 바랬다만, 대체 어느 썩어 죽을 놈의 나라 벱이 애비가 자슥 눈치보고 비위 맞추기 되어있노?”

누구를 향해 던져 버릴 듯이 앞에 놓인 소주병을 들어 올린 아버지는 털어 붓듯이 단숨에 병의 주둥이를 빨기 시작했다. 술을 넘기는 목젖도 울근불근 볼썽사납게 꿈틀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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