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객원칼럼] 여성 피임의 역사
최원준(경상대학교 의과대학 산부인과 교수)
[객원칼럼] 여성 피임의 역사
최원준(경상대학교 의과대학 산부인과 교수)
  • 경남일보
  • 승인 2017.01.30 09: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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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여성들은 어떻게 피임을 했을까. 세계적으로 가장 오래된 피임법은 고대 이집트인들이 석류씨를 이용한 방법으로 알려져 있다. 천연 에스트로겐을 가지고 있는 석류씨는 현대의 먹는 피임약처럼 배란을 억제했다. 배란 억제방법 외에 ‘차단식 피임법’도 역사적으로 오랫동안 사용돼 왔다. 고대 이집트인들은 파피루스, 벌꿀, 알칼리와 악어 똥 등으로 좌약을 만들어 자궁 입구와 질내에 넣어 피임을 했다고 한다. 그리스 시대에는 이미 ‘피임’과 ‘낙태’를 구분했는데 여성의 인권과 관련이 있다. 로마시대의 부인과 의술 창시자로 알려진 소라노스(Soranos)는 30여 가지의 피임기구를 사용했다고 한다. 중세 아랍에서는 낙타 자궁 속에 작은 돌을 넣어 피임을 하는 전통적인 방법에서 고안해 유리, 옥 등의 구슬을 이용, 피임을 했다고 하는데, 현대의 자궁내 장치의 시초라고 할 수 있겠다.

콘돔은 중세 이전부터 사용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콘돔으로 사용한 재료로는 양의 내장, 물고기 껍질에서 아마, 동물가죽에 이르기까지 가지각색이었다. 최초의 기록은 이탈리아의 의사이자 해부학자인 팔로피아(Fallopia)가 린넨으로 만든 남성용 콘돔을 사용했다고 한다. 하지만 당시에는 실패율이 높아서 널리 사용되지는 못했다. 현대적인 고무 콘돔은 1843년 미국 화학자인 찰스 굿이어(Goodyear)의 혁명적인 공법이 개발된 이후에 가능해졌다. 당시에는 이런 차단막을 이용한 피임법이 유럽 귀족들 사이에 유행했는데 매독과 임질 같은 성병을 예방하기 위함이었다.

먹는 피임약의 역사는 여성의 인권신장과 연관돼 있다. 세계 1차대전 이후의 세계는 매우 불안했다. 이러한 사회 혼란 중에 어떻게 하면 여성과 아이의 건강을 보호할 것인가에 대한 문제가 대두됐다. 1921년 하버란트(Haberlandt)에 의해 월경의 존재와 발생이 대뇌와 난소가 공동으로 생산하는 성호르몬에 의해 통제된다는 것이 증명됐다. 이러한 원리를 바탕으로 배란억제제가 생산된다. 독일회사인 쉐링에서는 1928년 최초의 ‘에스트로겐’ 약품인 ‘프로기논’을 발매했다. 1933년엔 첫 번째 생물학적 프로게스테론인 프로루톤을 출시했다. 미국 생물학자인 핀커스와 부인과 의사인 로크는 1956년 여성 6만명을 대상으로 처음으로 임상실험을 했는데, 에스트로겐과 프로게스테론 두 종류의 성호르몬을 작은 약으로 만들었더니 피임효과가 있었다는 것을 발표했다. 그리하여 1960년 미국 썰(Searle)제약회사가 시장판매 허가를 얻은 최초의 피임약 에노비드(Enovid)를 출시했다.

우리나라 여성에게 가장 홀대받고 있는 피임방법이 먹는 피임법이다. 지난 1960년대 범국가적인 가족계획사업에 사용된 고용량의 호르몬약으로 인한 부작용인 메스꺼움 등이 아직까지 기억에 남아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재의 피임약은 이러한 부작용을 극복하고 전 세계 10억명 이상의 여성이 사용하는 가장 안전한 피임방법이다. 여성을 원치 않는 임신의 공포에서 벗어나게 한 경구용 피임약의 개발은 여성 인권에 기념비적인 발전이 있게 한 역사적인 사건이라고 할 수 있다.
 
최원준(경상대학교 의과대학 산부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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