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19 (327)
[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19 (327)
  • 경남일보
  • 승인 2017.01.17 2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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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19 (327)

동작으로 보나 목청에 배인 노기로 보나 술은 이게 처음이 아니라 전작이 꽤 있는 듯했다. 쿨럭쿨럭 넘어가던 술이 기도로 들어갔는지 사래 기침을 캑캑 뱉어내는데 튀어나온 술과 침이 어린애의 배변으로 더럽혀진 듯 누렇게 얼룩져 있는 낡은 상의의 오지랖을 적시며 게걸게걸 흘러내렸다.

겨우 사래기침이 수습되자 다시 병나발을 불던 아버지는 콕 박히게 술병을 땅에다 드놓은 다음 어머니의 묫등을 두 발로 번갈아 가며 발길질하기 시작했다. 아직 다져지지도 않았거니와 얼부풀기조차 한 무덤 흙이 푹푹 패이고 있었다. 보다 못한 양지는 날카로운 목소리로 항의를 하며 아버지를 밀어냈다.

“와 그라는데예. 뭘 그렇게 편하게 잘해 주었다꼬 여어까지 와서 괴롭힙니꺼.”

돌연한 몸짓으로 홱 돌아서며 정면으로 노려보는 아버지의 한 쪽 눈이 녹슨 대포 구멍처럼 거부와 멸시를 품고 있었다.

“그래, 니 말 잘했다. 그리 끔찍히 생각는 에미만 부모고 애비는 아무껏도 아이란 말이가? 농막에 왔더란 소리 들었다. 애비 꼬락서이가 하도 같잖애서 그냥 간 거 나도 안다. 그렇지만 인간이 그라는 기 아이다.”

양지는 입을 딱 벌렸다. 아버지는 그럼 나한테 무얼 해주었었느냐고 물어야 한다. 그러나 그건 너무 야비한 일이다. 왼쪽 다리를 고무줄로 얽어맨 안경테 너머로 술에 전 벌건 외눈이 그녀를 응시하고 있다.

“애비가 없이모 니 몸은 어데서 날 끼고, 에미가 중하모 애비도 응당 중한 대접을 해줘야 되는 기지만 내 이때꺼정 그 꺼정은 안 바랬다.”

“이 세상에 태어난 거 좋아한 적 한 번도 없응깨 생색 내지 마이소.”

“그라모 죽어라, 죽어삐모 될 거 아이가.”

“괜한 트집 그만 잡으시고 정신 차리세요. 죄 없는 남의 애까지 데려다 우리처럼 설음둥이 만들지 말고요”

양지는 고종오빠와 나누었던 인식엄마의 일을 따지고 싶었다. 오빠는 이제 와서 곱다시 돈이 되돌아오기도 어렵게 됐는데 아이 엄마와 아버지의 윤리적인 정서에 해결을 맡겨 두는 게 더 낳을 것 같다는 말을 했다.

“그래 니 잘났다. 니 똑똑타 이년아. 그리 똑똑한 기 와 꼬치는 한 개 몬 달고 나왔더노. 니가 운제 자슥이라꼬 이 애비하고 선은 이렇고 후는 이렇다꼬 집안 걱정이나 한 번 해본 적이 있었더나. 있었시모 있었다 캐라!”

격앙된 몸짓으로 부르르 내달은 아버지는 양지의 두 팔을 움켜잡고 이를 악물며 흔들어 댔다. 터진 물고에서 봇물이 쏟아져 나오듯이 거칠고 격한 폭언도 그치지 않았다. 얼마나 벼르고 별러 왔었는지 안면근육에서 벌떡거리는 노기가 터질 듯 벌겋게 부풀어 오른다.

“야, 이년아 니는 그리 똑똑타 카는 기 와 니 에미는 몬 살리내노. 아이고이, 너것들이 우찌 내쏙을 알끼고. 그래 다아 부질없고 시장시럽다. 개천아 니 그러나 눈먼 봉사 내 그르제.”

갑자기 자조적인 태도로 변한 아버지는 잡고 있던 양지의 손을 뿌리치듯이 놓아 버리고 아까 있었던 자리로 정확하게 되돌아가 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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